2000년대 후반 'W폰'을 앞세워 이동통신 사업에 도전장을 던졌던 SK텔레시스가 통신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반도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인데, 매출의 60%가 통신에서 나온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업 규모는 크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결국 반도체 사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위해선 같은 식구이자 동종 업계인 SKC솔믹스와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SK텔레시스와 SKC솔믹스는 화학제품 제조업체 SKC(011790)의 자회사다.
4일 재계에 따르면 SK텔레시스는 최근 통신장비 사업부문과 통신망 유지보수 자회사 SKC인프라서비스를 팬택C&I에 매각한다고 밝혔다. 총 매각대금은 789억원으로, 8월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매각이 완료되면 SK텔레시스에는 반도체 시험 장치, 세정 소재 등을 생산하는 전자재료 사업부문만 남는다. SK텔레시스는 매각 대금을 활용해 반도체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SK텔레시스에 통신사업은 애증의 대상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평균 매출 성장률이 30%에 육박할 정도로 통신 중계기 사업이 잘 됐고, 이에 힘입어 휴대전화 제조업에 진출했다. 당시 SK텔레시스 모회사인 SKC의 회장을 맡았던 최신원 현 SK네트웍스 회장은 "매출 1조원의 이동통신 기업으로 만들겠다"며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드러냈다. 그렇게 2009년 8월 'W폰' 브랜드를 출시했다. 제품 전량을 SK텔레콤(017670)에 독점 공급하면서 KT(030200)의 휴대폰 자회사인 KT테크와 경쟁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과 한달 뒤 애플이 '아이폰'을 국내에 출시하면서 휴대전화 시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SK텔레시스는 기존 피처폰에 저가형 스마트폰을 출시하며 대응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2년 만인 2011년 휴대폰 제조업에서 철수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휴대전화 개발·판매 비용 때문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고, 결국 자본잠식에 빠졌다. SKC가 유상증자에 나서고 반도체 소재 사업을 넘겨준 덕분에 2016년 이후 흑자로 전환했지만, 자본잠식 상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최신원 회장과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당시 SKC가 SK텔레시스 유상증자에 참여하도록 해 SKC에 손실을 끼쳤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유상증자 이듬해부터 SK텔레시스가 흑자로 돌아선데다 이번에 통신부문을 789억원에 매각했다는 점에서 성공한 유상증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SK텔레시스의 통신업 철수는 당장 회사 매출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아직 전자재료사업의 기여도가 통신업 수준에 못미치기 때문이다. 송종휴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의 약 60%를 차지하는 통신망 사업 매각으로 계열 매출을 포함한 큰 폭의 외형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사업포트폴리오 약화와 함께, 존속하는 전자재료사업은 전방 반도체산업 의존도가 높아 전반적인 실적 민감도 역시 이전 대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시스는 지난해 406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통신부분이 2363억원으로 58.1%를 차지했다. 전자재료부문 매출은 1703억원으로 41.9%였다.
SK텔레시스와 SKC솔믹스의 합병설이 또다시 거론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SKC솔믹스는 반도체·부품 장비 사업 주력 업체로 지난 2019년 SKC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됐다. 지난해 SKC의 반도체 사업부문을 SKC솔믹스로 한데 모으는 작업을 시작할 때도 SK텔레시스와 SKC솔믹스의 합병설이 흘러나온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 모두 반도체 사업이라는 큰 틀로 묶을 수 있는만큼, 사업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합병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C는 SK텔레시스와 SKC솔믹스의 합병 관련 결정된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SKC 관계자는 "SK텔레시스를 향후 SKC의 성장 주축이 될 반도체 소재·부품 장비 사업 중심으로 확장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도 "통합 등은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고,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