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명 'ESG채권'을 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건설사부터 해운사, 항공사, 정유사까지 업종도 다양하다. 성적도 나쁘지 않다. ESG에 대한 금융권의 관심이 커지면서 ESG채권에 뭉칫돈이 몰리는 추세다. 기업들도 일반 회사채 대비 낮은 금리로 대규모 재원을 조달할 수 있고 대외적으로 ESG 경영 방침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ESG채권 발행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ESG채권 상장 잔액은 125조원으로 집계됐다. 60조원이었던 작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사회책임투자(SRI) 채권으로도 불리는 ESG채권은 발행자금이 친환경 또는 사회적 이득을 창출하는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채권을 뜻한다. 발행 목적에 따라 ▲녹색채권 ▲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으로 구분된다. ESG채권이 전체 회사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는 추세다. 작년 상반기 전체 회사채 상장 잔액 490조원 가운데 ESG채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였는데, 올해 상반기(544조원)에는 23%까지 늘었다.
기업들이 앞다퉈 발행하는 ESG채권은 업종을 불문하고 흥행에 성공하는 분위기다. 대한항공(003490)은 전날 국내 항공사 최초로 발행하는 ESG채권 규모를 3500억원으로 확정했다. 당초 총 2000억원 규모로 회사채를 발행할 예정이었는데, 지난 7일 기관투자자를 상대로 진행한 수요 예측(사전 청약)에서 약 5800억원이 넘는 매수 주문이 몰리면서 발행 금액을 늘렸다. 대한항공은 ESG채권을 통해 차세대 친환경 항공기를 도입할 예정이다.
11년 만에 회사채 발행에 나선 현대모비스(012330)도 전날 진행된 ESG채권 수요 예측에서 흥행을 거뒀다. 모집금액 2500억원의 4배가 넘는 1조8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조달된 자금을 연구개발(R&D) 통합센터 연구동 신축 등에 사용할 방침인데,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4000억원까지 증액 발행을 고려하는 중이다.
지난달 해운업계 최초로 500억원 규모의 ESG채권 발행에 나선 팬오션(028670)은 수요예측에서 목표금액의 8배가 넘는 4030억원의 매수 주문이 몰렸다. 지난 4월 그룹 최초로 ESG채권 발행에 나선 효성중공업(298040)도 모집금액 500억원의 3배가 넘는 1570억원이 몰리면서 발행금액을 720억원으로 증액했다. 올해 초 ESG채권을 발행한 현대오일뱅크와 현대제철(004020), SK하이닉스(000660) 역시 매수세가 몰리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ESG채권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한 배경을 두고 ESG에 대한 금융권의 관심이 커지면서 관련 투자 수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들어 ESG채권을 편입하는 펀드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며 "기금운용사들도 ESG 관련 투자 비중에 따라 기금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ESG채권에 관심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IB업계 관계자도 "국민연금이 2022년까지 운용 자산 절반을 ESG기업에 투자한다고 강조한 만큼 ESG채권에 대한 견고한 수요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의 ESG채권 발행 열풍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기업 입장에선 ESG채권 발행을 통해 대외적으로 ESG경영에 대한 기업의 강한 의지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ESG채권의 낮은 금리도 대규모 재원을 조달하는 데 유리하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3년물 기준 ESG채권은 일반 회사채보다 2bp(베이시스포인트)가량 낮게 형성되는 추세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 차원에서 매칭 펀드 방식 등으로 ESG 투자를 장려해 펀드의 규모가 커지고 수요가 늘면서 자연스레 ESG채권의 이자가 낮아진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일반 회사채보다 ESG채권 발행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