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산업재해예방에 영국보다 3배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사망사고율은 오히려 15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산업재해예방법은 기업의 자율적인 책임관리 체제로 운영하고, 전담 기관의 독립성도 보장하고 있다. 반면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한국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업주의 의무를 촘촘히 규정해놓고, 권한도 여러 부처에 나뉘어 있다. 산재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선 영국처럼 규제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4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영국의 산재예방 행정운영 체계 실태조사 결과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영국은 선진법제 및 예방행정을 통해 사망율을 획기적으로 낮춘 국가다. 2019년 기준 사고사망만인율(1만명당 사고사망자 비율)을 살펴보면 영국은 0.03으로, 한국(0.46)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영국은 기업 자율 책임관리 방식으로 규제를 운영 중이다. 1974년 보건안전법 제정 후 정부 지시나 명령 규제 방식에서 벗어났다. 위험요소에 대한 관리·통제 방식을 사업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식이다. 반면 한국은 산업안전보건법령에 사업주가 준수해야 할 의무가 1222개에 달하는 등 매우 상세히 규정하고 있고, 사업장 감독시 기업이 선택한 안전관리 방법이 규정과 다를 경우 무조건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경총은 "업종과 현장특성이 고려되지 않아 대기업조차 안전규정을 완벽히 준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 업무와 관련한 독립적 거버넌스를 구축했다는 것도 영국의 특징이다. 보건안전청(HSE)에 모든 권한이 부여돼 있고, HSE의 정책 수립 및 실행은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이사회와 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한다. 경총은 "한국의 경우 산업안전보건 업무는 고용노동부와 산업안전보건공단에 분산돼 있고, 관련 인력·예산 등 모든 분야는 기획재정부의 통제를 받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인력·예산 전략에서도 차이가 있다. 영국은 위험요소가 높은 업무에 역량을 집중해 HSE의 운영 효율성을 높였다. 또 데이터 분석시스템 등을 활용해 법 집행 우선대상을 선정하고 있다. 연간 예산은 3600억원 수준이다. 한국은 산업안전보건 행정 인력이 지난해 기준 2519명, 올해 기준 예산이 1조1121억원으로 영국보다 많다. 경총은 "인력·예산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적발 및 처벌 위주의 정책과 예방사업 비효율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영국은 감독관에게 강도 높은 교육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전문성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한국은 체계적 인사·훈련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이다. 또 영국은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다양한 정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산재감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규제가 도입되고 있다는 것이 경총의 분석이다.

경총은 "현행과 같은 지시·명령 위주의 획일적이고 경직된 규제방식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강력한 규제가 신설되더라도 현장적용성이 떨어져 사고사망자 감소효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산업재해를 효과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기업자율에 책임을 둔 규제방식으로의 전환과 함께 산업안전보건 행정조직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예방중심의 정책이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