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업계의 날갯짓이 심상찮다. 올해 사상 최고치 실적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백신 보급을 계기로 세계 경제가 기지개를 펴면서 각종 산업에서 석유화학제품을 찾기 시작한 영향이다. 최근 원자재값이 상승세를 보이자 미리 석유화학제품을 확보해두려는 움직임도 실적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다만 하반기부터는 실적 상승세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와 주가는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가는 올해 LG화학(051910)이 4조873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1조7982억원)보다 배 이상 높은 수치로, 현실화된다면 역대 최고 실적이다. LG화학은 2008년에 영업이익(1조3443억원) 1조원을 돌파한 이후 계속 1조~2조원대 등락을 반복해왔다. 3조원대를 거치지 않고 한번에 4조원대로 훌쩍 뛰는 셈이다.

나머지 석유화학업체들도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케미칼(011170)의 영업이익 전망치는 2조2351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3569억원) 대비 526% 급등한 수준이다. 금호석유(011780) 역시 200% 성장한 2조2271억원의 영업이익을 예고하고 있다. 한화솔루션(009830)은 1조513억원으로 올해 첫 1조원 돌파를 앞두고 있고, SK케미칼(285130)도 428% 늘어난 5614억원의 영업이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LG화학 여수공장 용성단지 전경.

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이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에는 경기 회복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제품은 안들어가는 곳이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산업에 공급된다”며 “결국 전 산업의 회복으로 경제성장률이 상승한다면 그만큼 석유화학산업도 성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WB)이 최근 전망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5.6%다. 지난 1월 예상치(4.1%)보다 1.5%포인트(p) 높아졌는데, 이는 1973년 6.6% 성장 이후 4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지난해엔 3.5% 역성장을 기록한 바 있다.

업계는 특히 가전·자동차 등 소비재와 인프라 부문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경기 회복에 따라 인프라 투자가 늘어나면 파이프나 전선, 건축재료 등의 소재로 쓰이는 PVC가 빛을 볼 수 있다. 국내 PVC 주력 생산 업체는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에 따르면 국제 PVC 가격은 지난 11일 기준 톤당 1326달러로 1년 전(톤당 770달러)보다 72%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끝나면 일회용품과 위생용품 수요가 줄어 석유화학업계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위생용품 수요는 계속되는데다 만약 하락한다고 해도 그 부분은 다른 소비재가 채워줄 것”이라며 “가전의 경우 소비자의 심미적 시각이 높아져 교체 수요가 꾸준히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자동차는 반도체 공급난만 해결된다면 여행 재개로 인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제품의 재고를 늘리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공장들이 쌓아뒀던 석유화학제품으로 버티며 가동률을 낮춰왔다”며 “다시 생산을 시작하는만큼 재고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동안 원자재 가격이 계속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지금이 가장 저렴한 시기라는 인식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같은 호실적 전망이 연말까지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해외 석유화학 기업의 공장 가동률이 회복되면 공급 확대로 수익성이 하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최근 들어 주요 화학제품 가격은 점차 조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 석유화학 업종의 변수는 기존 북미·유럽 설비의 가동률 회복과 연내 공급차질 해소, 국내 신규 설비 등의 가동률, 해상 물동량 병목현상 해소, 인도 등 동남아 신흥국가들의 코로나19 재확산 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 석유화학 기업의 주가는 좋은 실적이 예상되는데도 신통치 않은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연초 100만원을 넘겼던 LG화학은 최근 80만원 초반대에서 거래되고 있고,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5월 29만8500원으로 52주 최고치를 찍었다가 최근 20만원 초반대로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업황이 약세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 있긴 하지만 연간 실적은 그 어느때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주가에는 이같은 점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