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원자재·곡물값이 일제히 오르고 있는 가운데 주요 원자재인 펄프 가격 역시 6개월 만에 70% 가까이 급등하면서 제지업계가 제품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포장지 등으로 쓰이는 제품의 가격이 오르면 화장품과 같은 최종 제품의 가격도 오를 수 있다.

15일 제지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지업체 '빅2′인 한솔제지(213500)무림페이퍼(009200)는 최근 제품가격을 올리고 있다. 한솔제지는 지난 10일 도매업체를 대상으로 모든 품목의 백판지 가격을 톤(t)당 약 10%(7만원 가량) 인상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전달했다. 무림페이퍼도 일부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제지의 대전 백판지 공장 내부 모습. /한솔제지 제공

종이는 크게 인쇄용지(기록물)·산업용지(포장)·위생용지(화장지)·특수지 등으로 구분한다. 산업용지는 택배박스 등에 쓰이는 골판지와 제과·의약품·화장품 포장재로 쓰이는 백판지로 나뉜다. 이 중 펄프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 쪽은 인쇄용지와 백판지다.

이번 가격 인상 배경에는 제지 생산원가의 약 50%를 차지하는 펄프값 급등이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남부산혼합활엽수펄프(SBHK)의 기준 가격은 역대 최고치인 t당 925달러로,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t당 550달러) 대비 약 68.18% 올랐다. 지난해 최저치였던 t당 530달러(8월)와 비교하면 74.52% 상승했다.

제지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완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펄프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주춤했지만, 올해 전 세계적으로 인프라 투자를 재개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또 친환경을 강조하는 글로벌 트렌드도 종이 빨대 등 펄프를 이용한 제품 수요를 증가시켰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비대면 문화가 일상화된 점도 펄프값에 영향을 미쳤다. 직장 대신 집에서 사용하기 위한 냅킨·인쇄용지를 비롯해 커피 테이크아웃 등 포장용기 수요가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발생한 펄프에 대한 투기 수요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세계 펄프 생산량의 3분의 1이 넘는 물량을 소비한다.

무림과 CJ대한통운이 개발한 친환경 '종이 완충재'. /무림 제공

펄프 수입 및 제품 수출을 위한 운반 비용이 많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물류비용의 척도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1년 사이에 3배 넘게 치솟았다. 지난 11일 기준 SCFI는 3703.93으로 5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1년 전(1015.33) 대비 3.65배 상승한 수치다. 국내 수출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럽 노선 운임은 1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당 6335달러, 미주 동안 운임은 1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8554달러를 기록했다. 모두 역대 최고치다.

제지 제품 가격이 오르면, 최종 제품값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약 10% 상승할 경우 올해 4분기 이후 국내 소비자물가는 최대 0.2% 오를 전망이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백판지 가격 인상이 화장품 등 완제품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