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를 채굴할 때 산업용 또는 농업용 전기를 쓰면 소규모 상가가 주로 쓰는 일반용 전기를 사용할 때보다 최대 70%가량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단지 빈 공장, 농어촌 비닐하우스 등에서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유다. 용도에 맞지 않게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할 경우 전력 시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 등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전기를 판매하는 한국전력(015760)의 수익성도 악화될 수 있다. 한전은 최근 가상화폐 광풍이 크게 불었던 만큼 이달 중 가상화폐 채굴 관련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가상화폐 채굴기 설치 의뢰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상화폐 채굴기 판매 업자는 “2017~2018년 가상화폐 붐이 일었을 때 크게 늘었다가 한동안 시들했는데, 올해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자 채굴기를 찾는 고객이 다시 늘었다”며 “요즘 채굴기는 대부분 개인이 1~2개씩 구매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의 경우 10대 안팎에서 많으면 수백대, 수천대까지 설치한다”고 말했다. 채굴기 한대당 가격은 1200만원 수준이다.

국내 가상화폐 채굴은 보통 이더리움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한 채굴기 판매업자는 “채굴기 1대를 한달 내내 가동시킬 경우 현재 기준으로 한달에 0.2~0.3개가량 채굴된다”면서도 “채굴량은 매번 다르다”라고 말했다. 채굴 참여자가 많아지고 채굴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채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상화폐 가격도 채굴 수익성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최근 이더리움이 개당 300만원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달에 60만원에서 90만원어치의 가상화폐를 채굴할 수 있는 셈이다.

올 들어 5개월째 가정에서 컴퓨터 2대로 이더리움을 채굴하고 있다는 유튜버 ‘두꺼비왕자 스튜디오’는 “매달 얼마의 이더리움을 캤는지는 변동폭이 심해 계산하기 어렵다”면서 “지금까지는 한달에 대당 25만~45만원씩 수익을 올렸는데, 이달 들어서는 100달러(약 11만원) 정도로 수익성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1200만원짜리 채굴기를 샀다고 가정하면 본전을 뽑기까지 26개월(월 45만원 수익 기준)에서 109개월(월 11만원 수익 기준)까지 걸리는 셈이다.

가상화폐 채굴의 수익성은 가상화폐 가격과 채굴시장 상황에 달라지지만, 전기요금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채굴기를 돌리는데 필요한 전력량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최근 주로 판매되는 가상화폐 채굴기는 신제품 그래픽카드 6개가 들어간 제품으로, 시간당 900W의 전기를 사용한다. 채굴기를 하루 24시간, 한달 내내 가동할 경우 648kWh(30일 기준)의 전기를 쓴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약 6500가구의 월평균 전력 사용량(228kWh)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여기에 가상화폐를 채굴할 경우 쉽게 발열되는 컴퓨터와 채굴기를 식히기 위한 전력 등까지 포함하면 그 양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그래픽=정다운

◇ 채굴기 1대당 전기요금, 농업용이 가정용의 20~30% 수준

그래픽카드 사양에 따라서도 전기요금은 달라질 수 있다. 유튜버 두꺼비 스튜디오의 경우, 그래픽카드 RTX3060, RTX3070 제품을 쓰고 있다. 그는 “컴퓨터 한대당 평균 소비전력은 130W로, 24시간 한달 내내 돌렸을 때 월간 전력 사용량은 94kWh 정도”이라며 “1~2인 가구 기준으로 기본요금 1~2단계면 대당 월 1만~2만원 내외, 4인 가구 기준 3단계면 대당 월 3만원 내외의 전기요금이 추가된다”고 말했다. 한전은 가정용 전기에 누진제를 적용하는데, 월 사용량 200kWh 이하 1단계에는 1kWh당 기본요금 910원, 201~400kWh에는 1600원, 400kWh 초과에는 7300원을 적용한다. 사용량에 따라 부과되는 요금 역시 200kWh를 넘길 때마다 1kWh당 단가가 88원, 182원, 275원 등으로 뛴다.

가정용 전기를 이용해 가상화폐를 채굴할 경우 누진 구간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채굴기를 이용해 본격적으로 이더리움을 캐면 전기요금은 얼마나 오를까. 조선비즈가 한전에 의뢰해 6월 현재 기준 채굴기 1대(시간당 900w 쓰는 채굴기를 24시간, 30일 돌릴 때 가정)당 부과되는 평균 요금을 계산한 결과, 가정용 전기는 총 12만9500원이 나온다. 월 사용량이 400kWh를 초과한만큼 기본요금 7300원이 적용되고, 사용량 요금은 12만2200원으로 책정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다른 용도의 전기들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아 채굴기를 돌릴수록 이득이다. 일반용 전기의 경우 채굴기 1대를 가동하면 전기요금 9만8040원이 부과된다. 5kWh 계약전력 기준 기본요금 3만원, 사용량에 따라 부과되는 요금 6만8040원을 합한 결과다. 계약전력은 한전이 충분한 용량의 전력설비를 공급하기 위해 책정해둔 것으로, 평소 쓰는 전력량이 많아지면 계약전력을 늘려야 한다. 채굴기 판매업자는 “원칙대로라면 계약전력을 늘려야 하지만, 보통 계약전력 수준인 5kWh 정도로만 돼있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기본요금 2만7500원, 사용량요금 5만2488원 등 총 7만9988원으로, 가정용 전기의 62% 수준이다. 농업용 전기는 한달 총 요금이 가정용 전기의 22%가량인 2만7912원에 불과하다. 기본요금 5750원, 사용량요금 2만2162원 등 기본 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일반용 전기와 비교해도 산업용, 농업용 전기가 각각 18%, 72%가량 저렴하다.

가상화폐 채굴기를 설치해 돈을 버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사용할 수 있는 전기에는 제한이 있다. 한전의 ‘전력 기본 공급약관 시행세칙(제38조1항)’에 따르면, 가상화폐 채굴장은 ‘응용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으로 볼 수 있어 일반용 전기를 써야 한다. 일반용 전기는 공장 등 산업현장보다 적게 전기를 쓰지만 상업 용도일 때 쓰는 전기로, 자영업자 등이 소규모 점포에서 주로 사용한다. 상업용·농업용 전기를 이용해 가상화폐를 채굴할 경우 면탈금(일반용 전기요금과의 차액)과 추징금을 내야 한다. 단 가정에서 컴퓨터나 채굴기 1~2대로 채굴하는 것은 가정용 전기를 써도 무방하다.

최근 예술의전당 직원이 지하에 가상화폐 채굴기를 설치하고 돈을 벌어온 사실이 알려졌다./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 제공

◇ 채굴기 100대 가동시 일반용 전기 683만원… 농업용의 3배

채굴기 대수가 늘어날수록 전기요금은 크게 뛴다. 시간당 900W의 전기를 쓰는 채굴기 100대를 24시간 한달 내내 가동하려면 전기 6만4800kWh가 필요한데, 가정용 전기로는 채굴기 100대를 감당할 수 없다. 일반용 전기의 경우 683만40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일반용 전기의 77.2% 수준인 524만8800원만 내면 된다. 농업용 전기는 221만6160원으로, 일반용 전기의 32.4%에 불과하다. 계약전력을 사용량에 맞게 늘리고 여름·겨울 등 전기가 비싼 계절일 경우 요금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채굴기 100대로 한달에 20~30개의 이더리움을 캐고, 이더리움 가격이 개당 300만원이라고 하면 월 6000만~9000만원어치의 이더리움을 채굴하는 것이다. 농업용 전기로 채굴기 100대를 돌려 월 5000만원을 번다고 가정하면 채굴기 비용(12억원)을 상쇄하기까지 약 2년이 걸리는 셈이다.

어떤 전기를 쓰느냐에 따라 전기요금이 크게 차이나다보니 가상화폐 투자 광풍이 불 때마다 산업용·농업용 전기를 이용해 가상화폐를 채굴하는 사례가 잇따라 적발되고 있다. 지난 2018년 한전 조사 결과, 산업용·농업용 전기를 사용하다 적발된 가상화폐 채굴장은 전국 38곳에 달했다. 이들은 산업단지 폐공장 건물과 농어촌 창고, 비닐하우스 등에서 몰래 가상화폐를 채굴했다. 최근에는 예술의전당 한 직원이 박물관 지하에서 채굴기 2대를 가동해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정해진 전기 용도를 무시하고 저렴한 전기를 찾아쓰는 것은 각종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전력 사용량이 급속도로 늘면 전력 설비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 등 안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전기사용 계약 전반에 대한 불신이 나타날 수 있다. 한전의 전기판매수익을 감소시켜 결국 공기업인 한전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한전은 최근 가상화폐 광풍이 또 한차례 일었던만큼 이달 중 전국 사업소에 전력 사용 실태 조사를 지시할 계획이다. 한전은 주기적으로 전기사용 계약 위반 사례를 조사하는데, 매번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분야가 달라진다. 이번엔 가상화폐 채굴을 위해 산업용·농업용 전력을 쓰는 사례가 있는지 집중적으로 확인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