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디지털세 과세 대상을 최소화하고, 최저한세를 도입한다면 보완적 수단으로만 제한적 활용해줄 것을 건의했다. 전경련은 디지털세가 매출액 200억달러(약 22조원) 이상 전 업종에 부과될 경우, 국내에서 걷히는 법인세 4조7000억원 중 상당액이 해외로 유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8일 한국 경제계를 대표해 ▲디지털세 과세대상 최소화 ▲글로벌 최저한세의 제한적 적용 ▲제도 시행 전 유예기간 부여 등을 골자로 하는 건의서를 마티어스 콜먼 OECD 사무총장과 찰스 릭 존스턴 BIAC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9일 밝혔다. BIAC는 OECD 정책 결정 과정에 민간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설립된 독립자문기구다.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다국적 대기업의 이익 일부를 매출이 발생한 국가에 과세권을 주는 디지털세 도입 논의는 지난 2018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제안에서 출발했다.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이 해외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지만, 세금은 물리적 사업장이 있는 자국 등에만 내고 있어 '조세 회피'가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10월 OECD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디지털세 도입 방안은 ▲다국적 기업의 글로벌 이익 중 일부를 각 국가별 매출액에 따라 배분 후 해당 국가에서 과세 ▲자회사가 해외에서 납부한 법인세 실효세율이 최저한세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미달분을 본사 소재 국가에서 과세 등 두 가지로 구성돼 있다. 최근 미국 등이 디지털세 과세 대상을 전 업종으로 확대하고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전경련은 먼저 디지털세 과세 대상을 매출액 200억달러 이상 디지털 서비스 업종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전경련은 "과세대상의 무분별한 확대는 글로벌 디지털기업의 조세회피 방지라는 당초 디지털세의 도입 목적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대다수 제조업 영위 기업들은 세계 각국에서 생산 및 판매법인을 통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과세당국에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22조원 이상 기업의 법인세 비용은 7조7000억원이었다. 여기서 국내 주요 기업의 매출액 해외비중이 61.3%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4조7000억원이 디지털세 영향을 받아 일부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 다만 아직 디지털세 세부 방안이 나오지 않은만큼 영향을 받는 구체적 금액은 현재 산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최저한세율을 OECD가 제시한 12.5%보다 높이는 것 역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 전경련 입장이다. 전경련은 "최근 미국(21.0%), G7(15.0%)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최저한세율 상향 주장은 자국의 법인세 인상을 염두에 둔 일부 선진국이 기업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제조업 분야의 정상적인 생산·투자활동에 대해서는 최저한세율 적용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하더라도 조세회피문제에 대한 보완적 수단으로만 활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이 외에도 전경련은 새로운 조세제도 도입에 따른 부작용 해소를 위해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분쟁조정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경련은 "과거 OECD에서 추진했던 금융정보 자동교환협정(MCAA·역외 탈세 방지 협정) 당시에도 국가 간 합의 이후 제도 시행까지 약 3년이 소요됐다"며 "이번 디지털세 도입에도 최소 3년 이상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