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면 돌파다."

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주요 관계사 최고경영자(CEO)들이 모인 '그룹 CEO 세미나'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확립에 공격적으로 임해줄 것을 주문했다. 지금까지는 ESG 관련 이슈가 발생하면 리스크를 제거하는 등 수세적 자세로 일관해 왔다면, 앞으로는 ESG 경영을 비즈니스에 녹여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ESG 경영 전도사'를 자처할 정도로 최 회장이 의지를 보이고 있는 덕분에 SK그룹의 ESG 경영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수소사업 등 ESG를 중심에 둔 비즈니스를 중점 추진하고, 필요한 전력을 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이념 하에 SK그룹이 시작한 사회적 가치 측정 시스템도 글로벌 협의체에서 논의될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20년10월 23일 제주 디아넥스 호텔에서 열린 '2020 CEO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 SK그룹 ESG 성적, 국내 5위… 사회적 가치 측정해 '체계적 관리'

신한금융투자가 국내외 주요 8개 ESG 평가기관의 컨센서스를 모아 발간한 '뉴 패러다임, ESG'에 따르면, SK그룹은 지주회사 SK㈜와 SK텔레콤(017670)이 모두 A+를 받아 전체 128개 기업 중 5위를 기록했다. 특히 'S(사회)' 부문 점수가 7.5점으로 전체 평균(5.7점)과 비교해 30% 이상 높았다. 근로조건 관련 국제 기준과 법규를 준수하고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구성을 위해 직위 체제를 간소화한 점, 협력 회사들에게 특허 기술 사용권을 무상 제공하는 점 등이 인정받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 매출액 100대 기업의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ESG 등급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SK그룹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기업 중 AA를 받은 기업은 LG디스플레이(034220), KT&G(033780), ㈜SK 등 세 곳에 불과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SK의 경우 ESG 평가 세부항목 중 특출나게 뛰어난 점수를 받은 항목은 없지만, 대부분 항목에서 고르게 좋은 평가를 받아 평균 점수가 높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박길우

이처럼 SK그룹이 ESG 경영에서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체계적 관리'에 있다. SK그룹은 150여개 계열사의 일관된 ESG 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그룹 최고의사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내에 SV(Social Value)위원회와 환경사업위원회, 거버넌스위원회를 갖추고 있다. 특히 SV위원회는 그룹의 사회적 가치 창출 측정 시스템을 담당하며 ESG 경영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SK브로드밴드 대표를 역임한 이형희 SV위원장이 전담하고 있다.

SK그룹의 사회적 가치 창출 측정 시스템은 각 계열사가 기업활동을 통해 경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성과 등을 화폐 단위로 나타낸 것으로, SK그룹 ESG 경영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ESG 경영 성과를 정확히 측정해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최 회장의 지론 하에 출발했다. SK그룹은 지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ESG 화폐화 측정 글로벌 표준 개발을 위한 민간 기업 협의체인 VBA의 부의장사를 맡아 표준화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 27일 '2021 P4G 서울정상회의 비즈니스포럼'에서 "외부효과가 측정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환경 이슈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킬 수 없다"며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광범위하고 경제적 영향들을 화폐 단위로 정량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SK그룹 관계사들은 올해부터 사회적 가치 창출을 임직원 KPI(핵심평가지표)에도 50% 반영하기로 했다.

그래픽=박길우

◇ 사업 구조에 ESG 담는 SK… 지배구조도 이사회 중심 혁신

산출된 사회적 가치값을 바탕으로 SK그룹은 ESG 경영에서 부족한 부분을 빠르게 채워나가고 있다. ESG를 중심에 두고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꾸려진 '수소사업 추진단'이 대표적이다. SK㈜는 지난해 12월 에너지 관련 회사인 SK이노베이션(096770), SK E&S 등과 함께 전문 인력 20여명으로 구성된 수소 사업 전담 조직인 '수소사업 추진단'을 신설했다. 그룹 인프라를 활용해 수소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고, 수소 생산-유통-공급에 이르는 밸류체인을 통합 운영해 사업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추진단의 목표다.

지난해 12월 한국 최초로 'RE100'에 가입한 것도 SK그룹이 내세우는 ESG 경영 성과다. RE100에 가입하면 2050년까지 필요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데 대체로 2030년 60%, 2040년 90%의 단계를 거친다. RE100 가입을 선언한 기업은 RE100 위원회에 신청서를 제출한 뒤 1년 안에 관련 이행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RE100이 요구하는 기준을 충족하는 것이 쉽지 않아 현재까지 국내 가입 기업은 SK그룹을 포함해 10여곳에 불과하다.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혁신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SK㈜는 회사 경영의 3대 요소인 인사, 전략, 감사를 이사회와 폭넓게 공유하고 최고 의결 기구로서 이사회의 실질적 참여 수준과 독립성, 전문성을 대폭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사회 산하에 인사위원회와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SK 관계자는 "인사위원회는 대표이사 선임과 사내이사 보수 금액 심의 기능 등을 수행하고, ESG위원회는 앞으로 회사의 경영 전략이나 중요한 투자 관련 사항을 검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