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노선 컨테이너선사들이 약 15년동안 운임을 담합했다며 제재에 착수한 것과 관련, 해운업계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동이었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심사결과대로 제재 수위가 확정되면 최대 약 700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될 전망이어서 국내 해운업계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해운협회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해운법에 해운사들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며 해운사들의 운임 합의는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해운산업에 대한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이 아닌 해운법에 따라 규율돼야 한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가격 담합은 불법이지만, 해운법 29조는 ‘해운사들은 운임·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산항 신선대, 감만부두에서 컨테이너선이 하역작업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2018년 목재합판유통협회가 해운사들의 한국~동남아 노선 운임 담합이 의심된다고 신고하면서 시작됐다. 같은해 공정위는 조사에 착수했다. 2019년 8월 목재협회에서 공정위 신고를 철회한데 이어 선처 탄원서를 제출하면서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공정위는 직권조사를 이어갔고 지난달 해운사들에 공정거래법 위반 조사 결과·심사보고서를 보냈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심사보고서에는 2003년 10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국~동남아 노선 취항 선사들이 122차례에 걸쳐 운임관련 합의를 시행해 운임을 담합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운임 담합 관련 매출을 총 8조원으로 추산, 선사별로 매출의 8.5%~10%가량 과징금으로 부과해야 한다고 했다. 최대 약 7000억원이다. 과징금 부과대상은 HMM(011200), 팬오션(028670), 고려해운, 장금상선 등 국적선사 12곳과 외국적선사 11곳 등 총 23개 해운사다. 공정위는 전원회의를 열고 제재 여부와 수위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핵심은 해운사들의 공동행위가 법이 정한 절차를 지켰는지다. 해운사들의 공동행위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되려면 ▲사전에 화주와 협의할 것 ▲공동행위의 내용을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할 것 ▲공동행위로부터의 탈퇴를 제한하지 않을 것 등을 충족해야 한다. 공정위 심사보고서는 이같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봤고, 해운업계는 요건을 모두 지켰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해운업계는 미비점이 있더라도 공정거래법이 아닌 해운법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운임 담합으로 보더라도 정작 운임이 오르지 않았던 점도 쟁점이다. 김영무 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매번 선사간 운임 수준을 합의하고도 출혈경쟁으로 운임은 오히려 떨어졌다”며 “선사들의 공동행위가 성공한 적이 없어, 부당행위로 거둔 이익도 ‘0원’이다”라고 했다.

정부가 공동행위를 장려해왔던 정책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2017년 국적 컨테이너선사 14곳이 참여한 한국해운연합(KSP) 결성, 항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지난해에도 동남아항로 국적 컨테이너선사를 중심으로 해운동맹 ‘K-얼라이언스’를 추진했다.

국적선사 관계자는 “한진해운이 파산할 정도로 해운업계의 출혈경쟁이 심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정부가 국적선사간 협력을 지원해왔던 것”이라며 “이번 공정위 심사대로라면 정부가 담합을 유도한 셈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번 제재가 확정되면 앞으로 다른 노선에서도 제재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해운업계의 걱정이다. 공정위는 현재 한국~일본 노선과 한국~중국 노선의 운임 담합 여부도 조사하고 있다. 외국적선사에 대한 처벌이 다른 나라 경쟁당국의 보복조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영무 부회장은 “공정위 과징금 부과로 선사가 선박 등을 매각 물류난이 더 심화될 수 있다”며 “공정위가 해운법에 따라 정당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도록 대응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