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가 국내외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 중에서 지배구조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SK그룹이 2007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이후 10여년 만에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SK텔레콤(017670)을 통신·비통신으로 쪼개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겠다는 의도다. 지배구조상 제약이 많았던 신사업 투자 역시 이번 조치로 날개를 달게 됐다.

다만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선두를 노리는 SK하이닉스(000660)가 지주회사인 SK(034730)㈜의 손자회사로 묶여있는 바람에 투자 등에 제약을 받고 있다는 점은 지배구조를 추가로 개선할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줄줄이 예정돼 있는 계열사들의 기업공개(IPO) 작업이 마무리되면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올려 공격적 사업 확장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래 혁신을 위한 발판을 촘촘하게 준비하고 있는 SK그룹이지만,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결과에 따라 그룹을 관통하는 최 회장의 우호지분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 변수다. 최태원 회장의 사촌 형인 최신원 SK네트웍스(001740) 회장이 2000억원대 횡령 및 배임혐의로 구속돼 있다는 점 역시 지배구조의 리스크 요인이다.

2018년 8월 24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고 SK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 추모식에서 최재원(왼쪽부터) SK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추모객들을 맞이하고 있다./조선DB

◇ SK텔레콤 인적분할로 성장 동력 확보… SK하이닉스 자회사 불씨는 여전

SK그룹은 지주회사인 SK㈜와 SK디스커버리가 중간지주회사 또는 핵심 자회사를 통해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직 구조 형태다. 최태원 회장과 그의 가족들 등 특수관계인들이 SK㈜ 지분 28.5%를 보유하고 있고, SK㈜는 SK텔레콤, SKC(011790), SK이노베이션(096770), SK E&S, SK네트웍스 등의 지분을 각각 적게는 30%, 많게는 90%까지 확보하고 있다. 한때 SK㈜ 위에 SK C&C가 있어 ‘옥상옥’ 구조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2015년 SK㈜와 SK C&C를 합병하면서 SK㈜를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가 완성됐다.

SK케미칼(285130)SK가스(018670)를 보유한 또다른 지주사인 SK디스커버리는 최태원 회장의 사촌 형제인 최창원 부회장과 그의 특수관계인들이 지분 47.5%를 통해 지배하고 있다. 의사결정은 각 사 이사회가 하지만, 안건에 따라 주요 계열사 17곳의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협의가 이뤄진다.

SK㈜의 핵심 자회사 중 하나인 SK텔레콤은 최근 인공지능(AI)과 디지털 인프라를 맡는 ‘SKT 존속법인’과 정보통신기술(ICT) 투자전문회사인 ‘SKT 신설법인’으로 인적분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신설법인은 SK하이닉스·ADT캡스·11번가·티맵모빌리티 등 ICT 계열사를 품고, 존속법인엔 SK브로드밴드 등 계열사만 남겨 통신업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의 기업가치는 20조원대인데,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들의 총 기업가치보다 낮다. SK텔레콤은 이런 왜곡 현상을 해소하고, 각 기업 성격에 맞는 투자를 속도감있게 집행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인적분할은 SK하이닉스가 알짜 회사로 거듭나기 시작한 수년전부터 거론되던 시나리오다. SK㈜에 SK하이닉스의 배당수입이 직접적으로 반영되려면 SK㈜의 손자회사가 아닌 자회사가 돼야 한다는 이유에서 출발했다.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자회사를 보유하려면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한다는 공정거래법 역시 SK하이닉스의 공격적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SK텔레콤의 지배구조 개편에서도 시장의 관심사는 SK하이닉스에 쏠렸다. SK㈜가 SK텔레콤 신설법인과 합병해 SK하이닉스를 자회사로 만들어야 SK텔레콤을 인적분할하는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잇따랐다. 그러나 SK텔레콤이 신설법인과 SK㈜의 합병 통로로 활용될 수 있는 자사주 전량을 모두 소각하면서 합병은 당분간 어렵게 됐다. SK㈜와 SK텔레콤 신설법인의 합병으로 인한 SK㈜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 희석을 막고 합병 불확실성으로 인한 저평가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다만 장기적 시각에서 보면 여전히 SK하이닉스를 SK㈜의 자회사로 올리기 위한 합병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구체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2~3년간은 이같은 지배구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있다. 당장 올해 하반기 ADT캡스를 시작으로 원스토어, 11번가, SK스토아, 티맵모빌리티 등 계열사들의 IPO가 예정돼 있어 시장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096770)이 배터리 부문을 분할한 뒤 IPO에 나설 수 있는 점도 당분간 지배구조 변동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그래픽=이민경

◇ 최신원·최창원 계열분리 가능성 낮아… 복귀 앞둔 최재원 역할 주목

SK그룹은 최태원 회장과 그의 형제, 사촌들이 나눠 경영하는 형태다. 다른 오너 기업의 경우 친족 간 경영권 분쟁을 줄이기 위해 장자가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고, 형제 등은 계열 분리로 독립해 새로운 대기업 집단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구본무 LG 회장이 2018년 별세하자 아들인 구광모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회장은 LX로 독립한 것이 가장 최근 사례다. 삼성그룹 친족 역시 신세계(004170)·CJ·한솔 등으로 갈라졌다.

이 때문에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006120)의 계열 분리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K그룹은 지난 2017년 SK케미칼을 중간지주회사 SK디스커버리와 사업회사 SK케미칼로 분리했다. 최창원 부회장 등이 SK디스커버리 지분 45.1%를 보유하고 있고, 그 밑에 SK케미칼과 SK가스 등이 있는 사실상 독자경영체제다. 굳이 SK 브랜드를 떼내며 계열을 분리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최창원 부회장의 형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이 SKC 경영을 맡고 있던 2011년 초 “뿌리 찾기와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SK그룹도 이제는 사촌간 계열 분리를 할 시기가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지만, 현재로선 이 역시 가능성이 낮다. 최신원 회장은 지난 2015년 SKC 대표이사 및 등기임원에서 물러났고, SKC와 SK텔레시스 등 주요 계열사 지분도 줄였다. 이로써 최태원 회장 중심 지배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계열분리보다는 최태원 회장의 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 형의 짐을 나눠지는 형태로 형제 경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2013년 횡령죄로 수감됐다가 2016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라 5년간 제한된 취업은 오는 10월 풀린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역할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SK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주도해온만큼 SK이노베이션이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육성 중인 SK E&S를 통해 경영에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4월 7일 오후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에서 열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이혼소송 첫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조선DB

◇ 최태원·노소영 재산 분할, 최신원 횡령 혐의는 지배구조 리스크

미래 혁신을 위한 탄탄한 지배구조와 잡음 없는 경영 승계로 다른 기업의 주목을 끌고 있는 SK그룹이지만,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이 대표적이다. 노소영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태원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18.4%의 42.29%를 분할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체 상장주식 중 7.8%에 해당하는 규모로, 약 1조5000억원어치다. 노소영 관장이 승소해 요구한 SK㈜ 주식의 7.8%를 모두 가져가게 되면 최태원 회장의 지분은 10.6%로 떨어진다. 반면 노소영 관장의 지분율은 기존 보유 주식(0.01%)에 더해 7.81%로 높아진다. 국민연금(7.74%)과 최태원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6.85%)을 제치고 2대 주주로 올라서는 것이다.

다만 노소영 관장의 재산분할 요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기업 경영인의 경우 증여 받은 재산이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될 경우 경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법원이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009150) 고문의 이혼 소송 사례가 대표적이다. 임우재 전 고문은 이부진 사장에게 재산 2조5000억원 중 절반을 요구했지만, 그가 결국 받은 돈은 1%도 안되는 141억원에 불과했다.

노소영 관장이 SK㈜ 지분 7.8%를 가져간다 해도 그룹 경영권이 휘청일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도 있다. SK㈜ 주식만 보면 1분기 말 기준 최기원 이사장이 6.85%,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 1.52%, 최신원 회장이 0.04%, 최신원 회장의 장남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이 0.62% 등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들 특수관계인 지분만으로도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최신원 회장이 SKC(011790)와 SK네트웍스, SK텔레시스 등 6개 회사에서 2000억원 상당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구속돼 있다는 점 역시 SK그룹 지배구조를 흔드는 요인이다. 이 사건 여파로 SK그룹의 2인자로 꼽히는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까지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조 의장은 SKC 이사회 의장이었던 2015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SK텔레시스의 유상증자에 SKC가 700억원을 투자하게 해 SKC에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 SK네트웍스와 SKC의 주식 매매거래가 정지되는 등 난항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