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가 국내외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 중에서 지배구조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삼성그룹 오너 일가의 고(故) 이건희 회장의 지분 상속이 마무리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한층 강해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032830) 2대 주주로 올라서면서 삼성물산(028260)→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공고해졌다.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경영하는 것은 선대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이 선택한 방식과 동일하다. 나머지 이 회장 보유 삼성그룹 지분은 오너 일가가 법정 상속 비율대로 승계했다.

재계에서는 이번 주식 배분을 두고 이 부회장의 경영권은 강화하면서 가족 간 화합을 도모하는 ‘황금 분할’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분 상속 마무리로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 경영체제가 완성돼 당분간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 부회장 재판이 진행 중이고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도록 하는 삼성생명법 등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픽=이민경

◇ 삼성생명 개인 최대주주로 지배력 강화… 여전히 지배구조 열쇠는 삼성물산

삼성그룹 경영승계의 핵심은 이 부회장이 그룹 매출과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어떻게 강화하는가였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지분을 상속 받기 전에도 이미 삼성물산 지분을 17.48%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였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지분율 19.34%)이며,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물산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물산→생명→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었다.

이 회장은 생전 삼성생명 지분 20.76%를 보유한 1대주주로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해왔다. 반면 이 회장의 삼성생명 지분은 0.06%에 불과했다. 재계에서 생명에서 전자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던 이유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주식을 법정비율보다 많이 상속받으면서 그룹 지배력을 키웠다. 이 부회장은 이번 지분 상속으로 삼성생명 지분율을 10.44%까지 끌어올렸다. 삼성물산에 이은 2대 주주며, 개인 중 최대주주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그룹 경영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서긴 했지만, 여전히 그룹 지배구조의 키를 잡고 있는 회사는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그룹의 정점에 있는 회사로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생명 외에 삼성전자 주식도 5.01%를 소유하면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삼성SDS 지분도 17.08%를 보유하고 있다.

당분간 삼성그룹은 이런 지배구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삼성물산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도 거론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 삼성물산이 지주사가 되려면 공정거래법상 삼성전자 지분을 30%까지 늘려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일 종가 기준 약 482조원으로 삼성물산이 지분을 추가로 25% 매입하려면 약 120조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이 부회장이 현재 구속 수감 중이라 삼성그룹의 자발적인 지배구조 개편은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 삼성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번 상속으로 삼성그룹의 인위적인 지배구조 변화는 당분간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이부진·이서현 계열분리 가능성 낮아… 홍라희 여사 역할론 대두

재계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008770)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의 계열분리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지만, 시기상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활동을 할 때 이부진 사장은 호텔신라 경영에 주력했고, 이서현 이사장은 삼성물산 패션 부문(옛 제일모직) 사장과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 사장을 지내면서 패션과 광고 사업을 담당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이 부회장에게 삼성생명 지분을 몰아주는 대신 계열분리를 얻어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장기화로 호텔, 면세점, 패션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상황이라 무리한 계열분리를 하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1853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역시 지난해 매출액이 1조5450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320억원) 대비 10.8% 줄었고, 36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삼성그룹 내에서는 이번 지분 상속 과정에서 계열분리는 애초에 고려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홍라희 여사가 이 회장의 삼성전자 지분(4.18%) 가운데 3분의 1을 상속받으면서 경영권 방어나 계열분리 등 대형 이슈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향후 홍 여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 등 3남매에게 다시 물려주면 상속세를 두번 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럼에도 법정 비율대로 삼성전자 지분을 받아 개인 최대주주(2.3%)로 올라선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여러 해석이 나왔다. 홍 여사는 유족의 지분 상속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내외부로부터 지배구조 위협을 받을 때 홍 여사가 이 부회장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 위해 삼성전자 개인 최대주주가 되는 것을 자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홍 여사가 자녀들의 상속세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경영권 안정을 지원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왼쪽부터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홍라희 여사.

◇ 삼성생명법·사법리스크 등 지배구조 흔들 변수 산적

다만 ‘이재용 체제’가 삼성그룹 전반에 뿌리내리기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많다. 당장 불법승계 의혹 재판 등 사법 리스크가 남아 있다. 검찰은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부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부당하게 지시·승인했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의 혐의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의 분식회계로 인한 주식회사외부감사법 위반도 포함됐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하다. 재계와 법조계는 재판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해 최종 판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이 부회장의 사면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부회장이 풀려난다고 해도 이번 재판 결과에 따라 재수감될 가능성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삼성생명을 겨냥해 만든 보험업법 개정안도 삼성 지배구조를 흔들 이슈로 꼽힌다. 삼성생명법은 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보유액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해 보유 한도를 총자산의 3%로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보유분을 시가로 평가하고 총자산 3% 초과분은 법정 기한 내에 처분해야 한다. 보험사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열사 주식가치 반영 방식을 시가로 변경하자는 취지지만, 규제를 적용받는 보험사가 삼성생명 뿐이라 ‘삼성생명법’으로 불린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8.51%(5억815만7148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310조원이다. 개정안이 통과하면 삼성생명은 약 9조33000억원을 초과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데, 이 때 시장에 나올 삼성전자 매물은 30조원이 넘는다. 국내에서는 이 매물을 받아낼 수 있는 투자자가 많지 않아 대부분 외국인 투자자가 이 지분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화된다. 시장에서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넘기는 방안이 거론된다. 다만 3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이 방안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전자 지분을 인수할 경우 지주사로 강제전환되는 문제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물산이 생명의 전자 지분을 가져간다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가 되는데, 자회사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로 강제전환이 된다”며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최악의 경우 삼성전자 지배력 잃을 수 있는 등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