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004800)이 대주주로 있는 ‘세빛섬'의 재정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용객이 줄어든 영향이 크지만, 10년 넘게 자본 잠식 상태가 이어져 온 만큼 이전부터 수익 창출 능력이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효성과 2대 주주 서울주택도시공사(SH)는 올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오세훈 시장에게 지원을 요청할 방침이다. 그러나 서울시 안팎에선 오 시장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기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완전 자본 잠식' 세빛섬… 회계법인 “존속능력에 의문”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세빛섬의 최대 주주는 효성티앤씨(298020)다. 효성티앤씨가 세빛섬의 지분 62.25% 보유하면서 직접 운영을 맡고 있다. 20년 무상임대, 10년 유상임대 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는 민간투자사업(BOT) 방식이다.

그러나 세빛섬은 효성에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 올해 1분기 기준 세빛섬의 부채총계는 1206억원으로 자산총계 495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711억원으로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세빛섬을 찾는 방문객이 줄면서 손실이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그래픽=김란희

문제는 세빛섬의 이같은 재무 상태가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수십억~수백억원 규모의 적자가 쌓이면서 이미 2012년에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로 접어들었고 오늘날까지 완전 자본 잠식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올해 9월 27일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차입금 규모만 984억원에 달한다. 만기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 구체적인 연장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효성 측 설명이다.

지난해 회계 감사를 맡은 대주회계법인은 감사보고서를 통해 “차입금과 관련한 금융비용의 부담으로 회사의 당기순손실이 182억6200만원이고 당기말 현재 총부채가 총자산을 701억1500만원만큼 초과한다”며 “이러한 상황은 계속기업으로서의 그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 세빛섬, 각종 규제로 적자 못 면해

세빛섬은 과거 오세훈 시장이 일명 ‘한강 르네상스'를 표방하며 공을 들인 사업이다. 효성이 1400억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댔고 2009년 3월 착공해 2011년 9월 완공됐다. 그러나 오 시장 퇴임 후 새로 취임한 고(故) 박원순 시장이 “민자 사업자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체결된 불공정하고 부당한 계약”이라며 제동을 걸면서 개장이 무기한 연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0월 개장했지만, 각종 규제가 세빛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서울시가 세빛섬의 공공성을 강조하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행사 유치가 어려워진 것이다. 세빛섬에 입점한 음식점 가격 인상조차 서울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효성이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처럼 세빛섬을 광고물 관광명소로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이번엔 ‘선박 규제'에 가로막혔다. 세빛섬은 2011년 선박으로 등록돼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광고물을 설치할 수 없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2′ 촬영지였음에도 홍보 플래카드 하나 못 붙인 이유다.

막대한 부채를 지닌 세빛섬을 청산하기도 쉽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이미 효성이 1400억원에 가까운 사업비를 세빛섬에 투입했을 뿐 아니라 서울시와 BOT 계약을 맺고 있는 구조라 아무 때나 손쉽게 털고 나가기가 어렵다”며 “효성 입장에선 코로나19와 각종 규제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와 공동선대위원장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지난 4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세빛섬 인근 한강공원에서 열린 '시민과 함께 걷기' 행사에서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임기 1년 시장이 세빛섬 지원하기엔 부담 커”

그러던 중 지난 4월 오세훈 시장이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오 시장이 과거 심혈을 기울였던 세빛섬을 지원하고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와 효성은 조만간 오 시장에게 세빛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아직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세빛섬 고위 관계자는 “세빛섬의 문제는 유동인구는 많은데 실질적인 이용객은 적다는 것”이라며 “문화시설 유치 등 이용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서울시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시와 재계 안팎에선 세빛섬의 수익성을 강화하기 위한 뾰족한 대책이 마땅치 않고 오 시장의 임기가 내년 6월에 끝나는 만큼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기엔 정치적인 부담이 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지난달 유세 과정에서 세빛섬을 찾은 오 시장은 세빛섬의 누적 부채가 1200억원에 달한다는 지적에 대해 “민간 투자사업이라 서울시가 걱정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시 관계자는 “세빛섬이 오세훈 시장과 인연이 있다고 해도 당장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만큼 적극적으로 세빛섬 살리기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