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이 주요 그룹 총수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가장 많이 독대한 것으로 집계됐다. 공식 집계는 없지만, 전체 기업인 중에서도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기업인과의 만남이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현 정부가 힘을 싣는 반도체·배터리·백신 등에서 SK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면서 문 대통령의 이목을 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회장이 이끌고 있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와 재계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어 앞으로 문 대통령과 최 회장의 독대 기회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22일 조지아주로 이동해 SK이노베이션(096770)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문 대통령의 마지막 방미 일정이자 유일한 기업 관련 일정이다. 대한상의 회장 자격으로 방미 경제사절단에 포함된 최 회장이 현장에 동행한다.
최 회장이 다른 그룹 총수 없이 문 대통령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6번째다. 앞서 문 대통령은 2018년 10월 SK하이닉스(000660) 청주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최 회장과 처음으로 단독 만남을 가졌고, 일본 수출규제 조치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해 7월에도 SK하이닉스 이천 캠퍼스를 찾아 최 회장과 함께 소재·부품·장비 산업 지원책에 대해 논의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엔 SK바이오사이언스(302440) 판교 연구소와 안동 공장을 각각 지난해 10월, 올해 1월에 찾기도 했다.
올해 최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을 맡은 이후 만남 횟수는 더 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재계 대표 행사인 '상공의 날' 기념식에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최 회장과 별도의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대체로 취임하고 나서 첫번째 맞는 상공의 날 행사에 참석했던 관례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라 당시 재계에선 '최태원 효과'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최 회장이 문 대통령과의 만남 횟수를 차곡차곡 늘려가고 있지만 다른 그룹 총수들은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005380)그룹 회장은 각각 11번, 13번 문 대통령과 만났지만 그 중에서 단독으로 만난 경우는 3번씩에 불과하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의 경우 다른 그룹 총수들과 함께하는 행사를 제외하면 단독 만남은 한 번도 갖지 못했다.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과 최정우 포스코(POSCO) 회장은 각각 한번씩 충북 진천 한화큐셀 태양광전지 제조공장과 포항제철소를 찾은 문 대통령과 만났다.
문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하면 기업인과의 스킨십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권 성격상 친노동적 색채가 강하다보니 기업인과의 만남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직전 정부에서 기업인과의 잦은 접촉으로 문제가 있었던 만큼 더욱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인과의 소통이 막혀있다는 지적에 문 대통령은 최근 과거 정경 유착을 불러일으킨 '밀실 회의' 형태가 아닌 '공개 협의 채널'을 마련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최 회장과의 만남 횟수가 많은 데 대해선 SK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한몫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반도체(SK하이닉스), 백신(SK바이오사이언스), 전기차 배터리(SK이노베이션) 등 현 정부가 집중 지원하는 주력 산업과 차세대 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른 그룹과 함께 SK그룹이 미국에 가져다주는 '선물' 역시 문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줬다. SK이노베이션은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1, 2공장을 건설·가동중인데 여기에 3조원 규모의 3, 4공장 추가 건설을 검토 중이다. 또 SK이노베이션은 20일 포드와 미국내 배터리 합작공장 설립도 발표했다.
앞으로 문 대통령과 최 회장의 만남은 더욱 잦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문 대통령이 재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대한상의가 정부와 재계의 소통창구로 부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