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과 한화그룹이 도심항공교통(UAM·Urban Air Mobility) 시장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명 ‘플라잉 카(flying car)’ ‘에어 택시(air taxi)’로 불리는 UAM은 활주로 없이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소형 항공기를 활용한 신개념 이동 수단으로, 미래 도시의 교통 혼잡을 해결할 방안으로 꼽힌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2040년이면 전 세계 UAM 시장이 1조5000억달러(약 17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UAM이 빠른 시일 내 상용화되려면 항공기는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서비스까지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현대차와 한화시스템은 이를 총망라한 ‘UAM 생태계’ 구축을 본격화한다. 두 회사는 우선 사람을 실어나를 UAM 기체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향후 국토교통부 등과 협력해 UAM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기술 표준 등을 확립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양사 관계자는 “일단 항공기부터 띄울 수 있어야 UAM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향후 10년간은 기체 개발과 상용화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미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전 세계 UAM 시장이 지난해 70억달러 규모에서 오는 2040년 1조5000억달러(약 17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현대차 ‘자체 개발’ VS 한화 ‘협업’
두 회사의 UAM 전략은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세부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현대차는 그동안 자동차를 만들어왔던 것처럼 UAM 기체 역시 첫 설계 단계부터 마지막 제품 양산까지 주도권을 갖고 자체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항공기가 제대로 구동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보고, 승객과 화물을 아우르는 항공기 제작부터 항공기의 엔진에 해당하는 수소연료전지 파워트레인 개발,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개발 전략을 세웠다.
이원희 현대차 사장은 지난해 12월 개최한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미래 UAM 시장은 수십만 대에서 수백만 대의 기체를 필요로 할 것”이라며 “현대차의 제조 경쟁력과 수소연료전지 기술, 전동화 분야에서 축적된 경험을 토대로 고품질의 기체를 비용 효율적으로 대량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005380)는 오는 2026년 화물용 무인항공시스템(UAS)를 선보이고 2028년에 도심 운영에 최적화된 완전 전동화 UAM 모델을 출시한다. 2030년대에는 인접 도시를 서로 연결하는 지역 항공 모빌리티 제품을 내놓는다는 구상이다.
현대차는 아직 항공기 제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체 개발 역량을 키우기 위해 외부 전문가와 인재를 적극 영입하는 중이다. 지난 2월 현대차는 미국 항공우주 산업 전문가 벤 다이어친을 CTO(최고기술책임자)로 영입했고, 최근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과 부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차 UAM 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신재원 사업부장(사장) 역시 미 항공우주국(NASA) 출신으로, 지난 2019년 현대차에 합류했다. 현대차 UAM 사업부는 지난달부터 미국에서 현지 전문가 채용도 진행하고 있다.
한화시스템(272210)은 UAM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하늘을 나는 택시(에어택시)’ 상용화 시점을 앞당긴다는 전략이다. 한화시스템은 미 개인항공기(PAV) 개발업체인 오버에어와 함께 에어택시 ‘버터플라이’를 제작 중이다. 100% 전기로 구동되는 버터플라이는 최고 시속 320㎞(킬로미터)로 서울에서 인천까지 약 20분만에 이동이 가능해 에어택시에 적합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한화시스템은 지난해 1월 2500만달러(약 283억원)에 오버에어 지분 30%를 인수한 뒤 버터플라이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 상반기 중 미국에서 에어택시의 핵심인 전기추진 시스템(엔진)을 시험한 뒤 2024년까지 개발을 마치고, 2025년 양산과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게 목표다. 현대차의 예상 시제품 상용화 시점보다 약 5년 빠르다.
최근 한화시스템은 1조2000억원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는데, 이 중 4500억원을 UAM 분야에 투자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향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산 계열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면서 “한화시스템의 2030년 UAM 사업의 예상 매출액은 11조4000억원”이라고 말했다.
◇ 국토부와 ‘UAM 팀 코리아' 발족
두 회사는 기체 개발에 이어 향후 ‘UAM 생태계’ 조성에도 힘쓸 계획이다. 에어택시가 강남역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려면 효과적으로 항로 등을 조절하는 교통관리·관제 시스템과 이착륙 시설 등이 필요한데, 양사는 이를 위해 관련 기업, 기관 등과 사업협력을 맺었다.
신재원 현대차 UAM 사업부장(사장)은 올해 초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UAM 기체를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UAM 생태계를 조성해 시장을 선도하는 리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KT(030200)(통신), 현대건설(000720)(이착륙장 건설), 인천국제공항공사(인프라), 항공안전기술원(연구) 등과 손잡았다. KT는 UAM 교통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현대건설과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에어택시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이착륙 시설 ‘버티포트(vertiport)’ 구축을 담당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규모 있는 UAM 시장 실현을 위해서는 기체 개발로는 충분하지 않다”면서 “연방·지방 정부, 다수의 규제 기관, 부동산 개발자, 기체 개발자, 항공 내비게이션 서비스 제공 업체가 모두 협력해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한화시스템은 SK텔레콤(017670), 한국공항공사, 한국교통연구원 등과 팀을 꾸렸다. SK텔레콤이 UAM을 관제할 통신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공항공사가 에어택시의 이착륙은 물론, 충전·수리까지 가능한 거점인 ‘버티허브’ 구축을 도맡는다. 수백미터 고도에서 날아다니는 에어택시는 지상 통신망으로 신호를 주고받기 어려워 위성통신 기술이 필요한데, 한화시스템은 기체 개발과 함께 저궤도 위성통신 사업도 추진한다.
정부도 국내 UAM 생태계 구축에 필요한 중장기 발전 전략 수립에 돌입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현대차, 한화시스템, 대한항공,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 등이 참여하는 ‘UAM 팀 코리아’를 발족했고 지난해 말 첫 협의체를 열어 UAM 기술개발 과제를 논의했다. 국토부는 올해까지를 준비 단계로 보고 개화지 테스트(2022~2023년), 수도권 실증노선 테스트(2024년) 등을 거쳐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초 구체적인 기술개발 청사진이 담긴 ‘K-UAM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기체 개발부터 각종 기술 표준,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 등의 준비 작업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UAM 시장이 최소 2030년은 돼야 본격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UAM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시장이 전혀 형성되지 않았고 해외에서도 스타트업 위주로 시제품을 선보이는 단계이기 때문에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우고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