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세단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공간감과 활동성을 겸비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밀려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었지만, SUV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승차감과 프리미엄 이미지 등 세단 고유의 상품성이 재조명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산차는 물론 수입차까지 주요 브랜드들은 주력 세단 신형을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에 나섰다.
13일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5월 18일 시작된 대형 세단 '더 뉴 S-클래스'와 '더 뉴 마이바흐 S-클래스'의 사전 계약 건수는 지난 10일 기준 2500대를 넘어섰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올해 3분기 고객 인도 예정 물량이 사전 계약만으로 모두 소진된 상태"라며 "사전 계약 시 500만원을 입금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 실제 구매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세단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은 다른 브랜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차(005380)가 지난 5월 출시한 '더 뉴 그랜저'는 지난 6월부터 두 달 연속 국산차 판매량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4월 국내에 출시된 아우디의 주력 세단 '더 뉴 A6'는 지난달 전체 수입차 가솔린 모델 중 판매량 1위에 올랐다. A6는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와 함께 수입차 세단 '3강(强)'으로 꼽힌다. 한때 주춤했던 아우디는 A6 흥행에 힘입어 올해 1~7월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4% 뛰었다.
한동안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세단은 제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이후 캠핑 등 야외 활동 수요가 급부상하면서 실내 공간과 적재 능력이 차를 선택하는 핵심 기준이 됐고, 이 과정에서 SUV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생긴 현상이다.
세단은 구조 특성상 트렁크에 대형 짐을 싣기 어렵고, 차체도 낮아 거친 환경 주행엔 부적합하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신차 중 세단 비중은 2020년 41.7%로 떨어지며 처음으로 SUV(43.3%)에 1위를 내줘야 했다.
최근 들어 세단이 주목받는 데는 SUV가 포화 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국내 자동차 시장이 SUV에 편중됐던 만큼, 이와 차별화된 디자인과 세단 특유의 프리미엄 이미지, 승차감 등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신차 판매량 중 SUV 비중은 2020년부터 2024년(56.6%)까지 매년 3%포인트 이상 확대되다가, 지난해(57.8%) 상승폭은 1%포인트대로 줄어들었다.
경제적 이유도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같은 차급일 경우 SUV가 세단보다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며 "신차 가격이 전반적으로 인상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합리적 가격대를 갖춘 세단을 찾는 수요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제네시스를 예로 들면, 준대형 세단인 G80(6063만~8790만원)보다 준대형 SUV인 GV80(6886만~9928만원)이 더 비싸다.
세단 돌풍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는 대표 준중형 세단 '아반떼'의 8세대 완전 변경 모델을 공개했는데, 계약 접수 첫날에만 1만대가 넘는 실적을 올렸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전기 대형 세단 'ES90'을 공식 출시했는데, 글로벌 주요 시장 대비 최대 5000만원 이상 낮게 가격을 책정하며 공격적 판매에 나섰다. BMW코리아는 하반기 중 플래그십 전기 세단 'i7' 부분 변경 모델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