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직접 교육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초 경영진에게 '바이브 코딩' 교육을 받을 것을 제안하며 이같이 말했다. 바이브 코딩은 개발자가 코드를 직접 짜는 대신 일상 대화처럼 자연어로 아이디어나 느낌(vibe)을 설명하면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실행 가능한 코드를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비(非)개발자도 업무에 필요한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 쓸 수 있다.

당황한 실무진은 굳이 총수까지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며 만류했지만, 그는 재차 AI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참가하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후 정 회장은 지금껏 경영진과 함께 성실하게 바이브 코딩 교육 과정을 수강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상반기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바이브 코딩 체험하는 모습. /현대차 제공

진은숙 현대차·기아 정보통신기술(ICT)담당 사장은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이 같은 일화를 소개하며 "바이브 코딩 교육은 정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교육을 받은 뒤 정 회장은 "경영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AI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의사 결정에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진 사장은 "AI를 통해 경영진의 일하는 방식과 기술 수용성을 바꾸지 않으면 조직 전체의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는 게 정 회장의 지론"이라고 전했다.

정 회장이 지난 2018년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2019년부터 디지털 전환(DX)과 인공지능 전환(AX)을 준비해왔다. 2022년부터 지라(JIRA)와 두레이, 컨플루언스, 마이크로소프트 'M365'를 도입해 일하는 방식부터 바꿨고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연구개발(R&D)과 생산, 품질, 판매 분야의 모든 데이터를 표준화해 연결했다.

기반이 갖춰지자 지난해부터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 챗 프로'를 일반 임직원에게 개방했다. 보안이 확보된 사내 환경에서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 등 외부 거대언어모델(LLM)을 골라 쓸 수 있고, 사내 데이터와 연결해 업무용 AI 에이전트를 만드는 자체 코딩 체계도 갖췄다. 지난달 기준 사용자는 3만 명을 넘어 현대차·기아 일반·연구직의 약 80%에 달한다.

진은숙 현대자동차그룹 ICT담당 사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양재사옥에서 열린 '현대자동차그룹 AX(AI 전환) 성과 발표회'에서 AI 전환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성과는 현장에서 나타났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로 과거 충돌 시험 데이터를 찾고 분석하는 시간을 약 90% 줄였다. 제조 현장에서는 공정 위에 있는 차량과 시스템상 차량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를 글로벌 약 70개 생산 거점에 적용해 연간 52억4000만원을 절감했다. '대차 정렬 최적화 기술'로 불필요한 생산 중단 시간을 약 86% 단축했다.

정비 분야에서는 차량 오류나 증상을 입력하면 수리법 등의 관련 데이터를 즉시 제시해주는 AI를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돼 과거 기록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실시간 정비 소요도 분석한다고 한다. 이를 통해 대응 시간은 기존 대비 42% 짧아졌다. 현재 미국에서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고, 지난 6월부터 유럽과 아시아태평양, 중남미 등 6000여개 딜러와 4만여명의 정비사들도 활용할 수 있도록 확대하고 있다.

바이브 코딩 확대에 따른 시행착오도 있었다. 진 사장은 "비개발자가 만든 AI 에이전트가 사내 문서 약 5000개를 삭제해 복구에 2박 3일이 걸린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런 사고도 없었다는 것은 실제로 해보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시행착오를 통해 안전한 활용 기준을 만드는 것도 AX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AI 인프라를 제품 경쟁력과 직결되는 '업스트림(AI를 외부에서 활용하는 영역)'과 사내 지원 업무인 '다운스트림(회사 내부에서 활용하는 영역)'으로 구분해 추진하고 있다. 자율주행과 피지컬 AI 등 업스트림에서는 자체 모델과 기반 기술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새만금에 2030년까지 AI 데이터센터(AIDC)를 구축하고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도 엔비디아를 통해 확보하고 있다.

AX를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차량 개발이다. AX를 추진하며 사내 업무 효율화를 넘어 축적한 데이터와 AI 역량을 제품 개발 속도로 환산하겠다는 구상이다. 진 사장은 "차량 개발 기간을 어떻게 단축할지, 개발을 AI로 어떻게 풀 것인지 과제를 발굴하고 있다"며 "차량 개발 기간은 중국 완성차 업체보다 긴 편"이라고 했다. 이어 "관련 계획을 세우고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이 12일 서울 서초구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AX(AI 전환) 성과 발표회'에서 2019년부터 디지털 전환(DX)과 이를 기반으로 한 AX의 여정 및 비전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용 절감은 과제로 꼽힌다. AI 활용을 위한 금액이 다수 투입되기 때문이다. 진 사장은 AI 프로젝트를 검토할 때마다 비싼 AI를 써서 풀 문제인지, 일반 알고리즘으로도 해결되는 문제인 지를 먼저 본다고 했다. 다만 이날 발표회에서 비용을 구체적으로 줄일 방안을 제시하진 않았다. 진 사장은 "연구원·개발자들이 잘 활용하도록 분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