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달러화, 중국 위안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빠르게 내려가면서 현대차·기아의 하반기 실적에 비상등이 켜졌다. 원화 가치가 오르면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의 원화 환산 수익이 줄어들고, 내수 시장에서는 중국산(産) 자동차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된다.

현대차 차량들이 울산공장 부두에서 수출 선적을 위해 주차돼 있다. /현대차 제공

11일 외환 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40분 현재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4.1원(0.3%) 하락한 1415.4원에 거래되고 있다.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지난달 1일 1552.5원을 기록했었다. 최근 1개월 여 간 원화 가치가 줄곧 강세를 보이면서 환율이 9% 가까이 하락한 것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하락한 데는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우선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으로 중동 정세의 긴장감이 약화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 여기에 지난달 1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연 2.75%로 올린 것도 영향을 줬다.

최근 미국이 일본과 공조해 엔화 가치 회복에 나선 점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크게 떨어지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엔화에 이어 우방국 통화인 원화의 가치를 높이는 데도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엔화가 계속 약세를 보인다면 다른 통화들도 그 뒤를 따를 것"이라며 "우리는 원화의 과도한 변동성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과 일본은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공동으로 외환 시장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금융 시장에서는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한국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3500억달러(약 498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했는데, 원화 약세로 투자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미국이 이를 감안해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제는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빠르게 올라갈 경우 수출을 통해 얻는 수익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특히 대표적인 수출 업종으로 꼽히는 자동차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미국은 현대차·기아의 글로벌 전체 판매량에서 약 30%의 비중을 차지한다. 현대차는 앨라배마주, 기아는 조지아주에 현지 공장을 두고 있으며, 전기차는 조지아주의 친환경차 전용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에서 생산한다. 그러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하이브리드 차종은 대부분 국내에서 수출하기 때문에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하락하면 수익이 감소할 수 밖에 없다.

현대차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5% 움직일 경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1698억원 변동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 2분기에 현대차는 전체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6.9% 감소한 99만1885대에 그쳤지만, 환율 효과 덕에 매출액은 1.9% 늘어난 49조2153억원에 달했다. 이 기간 달러 대비 원화의 평균 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7% 상승한 1502원이었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에 신형 아반떼와 투싼, 제네시스 GV80 하이브리드 등 여러 신차를 선보일 계획인데, 이들 차종은 미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주력 모델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300원대로 떨어지고 원화가 줄곧 강세를 보일 경우 기대했던 신차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안화와 비교해 원화 가치가 계속 강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현대차·기아에게 악재다. 이날 현재 외환 시장에서 위안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0.7원(0.3%) 내린 209.73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달 1일 마감된 228.51원과 비교하면 1개월 여 만에 8.2% 하락한 수치다.

서울 영등포구 소재 테슬라 여의도 스토어에 중형 전기 SUV '모델Y'(앞)와 준대형 전기 SUV '모델X'가 전시된 모습./뉴스1

원화 가치가 오를수록 국내에서 판매되는 중국 전기차는 마진이 높아진다. BYD 등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현지 브랜드 뿐 아니라 중국에서 차를 생산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테슬라도 높아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국내 시장을 더 빠르게 잠식할 수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에서 신규 등록된 중국산 전기차는 6만9513대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8.7% 급증한 것이다. 전체 신규 등록 전기차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상반기 26.8%에서 올해는 35%로 늘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BYD에 이어 지커가 국내 판매를 시작했고 체리 등 다른 중국 브랜드들도 하반기부터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며 "위안화 대비 원화 환율의 하락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현대차·기아가 만드는 전기차의 입지도 지금보다 더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