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석에 올라 '리쥬브네이트' 기능을 켰다. 버튼 하나에 좌석이 180도 가까이 뒤로 젖혀졌고, 마사지 기능이 곧바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어 "편히 쉬라"는 안내 메시지가 흘러나오며 대시보드 디스플레이엔 폭포가, 중앙 디스플레이엔 개울가 풍경이 펼쳐졌다.
스피커에선 물소리와 새소리가 섞인 자연의 소리가 울렸다. 향수를 장착하면 실내 향까지 3단계로 조절해준다. 지난 22일 시승한 링컨 네비게이터 이야기다. 링컨 측은 "바퀴 위에서 스파를 즐기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시승한 차는 지난달 국내에 출시된 5세대 모델이다. 링컨이 내세운 네비게이터의 핵심 가치는 '궁극의 안식처'. 리쥬브네이트는 이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승부수로 보인다. 국산·수입 브랜드를 통틀어 처음 등장한 기능이라 신선했고, '장거리 운전할 때 유용하겠다'는 게 첫 인상이었다.
링컨 측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반응도 뜨겁다고 한다. 실용성을 앞세운 포드 익스페디션, 고급스러움에 방점을 찍은 캐딜락 에스컬레이드와는 확실히 다른 방향이다.
실내에 들어서자마자 대시보드 위에 자리 잡은 48인치 대형 파노라믹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4세대 모델과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점 중 하나다.
이 디스플레이 하나로 내비게이션과 속도 등 각종 계기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운전 중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으로 다가왔다.
물리 버튼이 대거 사라진 것도 눈에 띄었다. 비상등과 시동, 변속, 트레일러 연결 버튼을 제외한 모든 기능이 11.1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안으로 들어갔다.
다만 이 통합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주행모드를 바꾸려 해도 디스플레이를 세 번 이상 터치해야 했는데, 주행 중에는 사실상 시도하기 어려웠다.
차체가 큰 만큼 하단이나 좌우 하부의 상황을 카메라로 찍어 보여주는 기능이 있긴 했지만, 이 역시 디스플레이에서 '딥 컨디션스(Deep Conditions)' 모드를 직접 선택해야만 볼 수 있었다.
노면 정보나 근접 차량을 차량이 알아서 인식해 하부 화면을 띄워주는 경쟁 모델이나 한번만 누르면 작동하는 물리 버튼을 갖춘 차량과 비교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시트에 앉아보니 '궁극의 안식처'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1열 시트는 몇 차례 조절만으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을 수 있었는데, 운전석이 상하좌우 30방향, 조수석이 28방향까지 전동 조절되는 덕분이다.
오퓰런스 가죽이 적용된 시트는 가죽 소파에 앉은 듯 푹신했고, 열선과 통풍 기능도 갖췄다. 대시보드와 센터콘솔에 두른 천연 나무 트림이 고급스러움을 한층 더했다.
2열로 넘어가도 아쉬울 게 없었다. 열선·통풍은 물론 마사지 기능까지 1열과 동일하게 누릴 수 있고, 모든 조작은 2열 중앙 디스플레이의 터치로 이뤄진다.
키 172㎝인 기자가 2열에 앉아 시트를 뒤로 옮기니 다리를 뻗을 정도의 공간이 나왔다. 3110㎜에 달하는 휠베이스 덕분이다. 3열에는 전동 리클라이닝 기능까지 마련돼 있었다.
편안함을 앞세운 차량인 만큼, 주행 질감 자체는 매우 부드러웠다. 국내 출시된 링컨 네비게이터는 3.5L 트윈 터보차저 6기통 엔진을 얹은 블랙 레이블 단일 트림이다.
가속 페달을 밟자 6기통 특유의 진동이 발끝까지 전해지면서도 낮게 깔리는 엔진음이 들렸다. 거슬리지 않는 엔진음이다.
가속 페달과 스티어링 휠은 묵직한 편이었다. 노면 정보가 크게 전달되진 않았으며, 코너링에서 차체는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는 편이었다.
속도를 낼 줄 아는 차량이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끊김 없이 속도가 붙었다. 자동 10단 변속기와 맞물린 6기통 엔진은 최고 출력 446마력, 최대토크 70.5㎏·m을 낸다.
링컨 네비게이터가 갖춘 주행모드는 총 6가지다. 일반과 사륜 기반의 일반 4A, 스포츠 성향의 익사이트, 효율 주행에 초점을 맞춘 컨서브(Conserve), 미끄러운 노면에 대응하는 슬리퍼리, 앞서 언급한 딥 컨디션스까지 상황에 맞춰 고를 수 있다.
다만 모드 변경에 따른 차이가 크게 체감되지는 않았다. 익사이트 모드를 선택했을 때 스티어링 휠은 변화가 없었고 가속 페달 반응은 빨라졌는데,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낀 건 두 번째 시도에서였다. 디스플레이에 각 모드에 대한 설명은 한글로 표시돼 있었지만, 정작 모드 이름 자체는 영어로만 돼 있어 아쉬운 대목으로 남았다.
달리는 실력 못지 않게 서는 실력도 좋았다. 이날 서울엔 비가 내렸는데,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마다 제동력이 좋다는 것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공차중량이 2765㎏에 달하는 덩치에도 빗길에서 원하는 위치에 안정적으로 세울 수 있었다.
복합 연비는 1L당 6.8㎞인데, 서울과 양평을 오간 70㎞ 구간을 주행한 뒤 확인한 실주행 연비는 1L당 6.3㎞였다.
외관의 가장 큰 변화는 전면부다. 링컨을 상징하는 크롬 그릴을 전면 바 형태의 라이트가 가로지르고, 전작보다 작아진 헤드램프와 어우러지며 육중한 덩치에도 날렵한 인상을 남긴다.
운전자가 다가서는 걸 감지해 전면부터 차문 손잡이까지 순차적으로 불이 들어오는 웰컴 라이트, 손잡이를 당기는 순간 빠르게 튀어나오는 사이드스텝도 인상 깊었다. 차체 크기는 길이 5340㎜, 너비 2070㎜, 높이 1996㎜로 전작과 큰 차이가 없다.
외부 변화 중 또 하나는 분할형 트렁크 문이다. 이른바 '스플릿 게이트'다. 상단과 하단이 각각 독립적으로 열리는 구조로, 링컨 측은 "넓은 개방감과 적재 편의성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하단 문은 최대 227㎏까지 견딜 수 있어 덩치가 큰 성인 2명이 걸터앉아도 충분할 정도다.
트렁크 용량은 648.5L다. 3열을 접으면 1979.4L로 늘어난다. 5세대 링컨 네비게이터의 가격은 개별소비세 5%를 적용해 1억651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