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형차를 선호하던 유럽 시장에서 최근 중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중형 세단의 선호도가 크게 높아지고 있다. 테슬라와 BYD 등 중국 기업들이 가성비 좋은 전기차를 선보이는 동시에 전기 주행거리가 늘어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중대형차까지 등장하면서다. 이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유럽시장 내 중대형 라인업 강화에 나섰다.

20일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데이타포스에 따르면, 올해 1~5월 유럽 내 중대형 SUV 판매량은 47만4553대로 전년 동기 대비 27.5% 증가했다. 이는 SUV와 세단, 밴 등을 합한 모든 세그먼트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준중형 SUV가 120만8804대로 SUV 시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하지만, 증가율은 11.9%로 중대형 SUV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소형 SUV(94만230대) 판매량도 7.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세단(해치백·왜건 포함)에서도 중형 이상 선호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수요가 높은 소형 세단은 78만6303대 판매됐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줄어든 것이다. 준중형 세단(48만5999대)은 15.2% 급감했다. 반면 중형 세단은 15만4993대로 세단 세그먼트 중 유일한 두 자릿수 증가율인 14.0%를 기록했다. 경차는 9.7%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이전까지 유럽은 준중형 이하 차량 선호 경향이 뚜렷했다. 좁은 도로와 협소한 주차 환경 특성상 차체가 작을수록 주행과 노상 주차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차량을 단순한 이동 수단으로 인식하는 실용주의 정서도 한몫 했다. 배기량이 클수록 세금 부담이 가중되는 세제 구조 역시 소형차를 찾는 주요 요인이다.

하지만 최근 테슬라와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저렴한 전기차를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올해 중대형 SUV 판매 1위는 테슬라 '모델 Y'로, 전년 동기 대비 67.9% 늘어난 7만6446대가 판매됐다. 판매량 상위 5위 모델 중 성장률로 보면 BYD의 '씰 U'(3만8822대)가 49.4% 증가해 모델 Y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중형 세단에서는 테슬라 '모델3'가 30.9% 늘어난 3만8903대로 1위에 올랐다. 폴크스바겐의 '파사트'(2만5503대)와 'ID.7'(2만5215대)이 각각 2, 3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19.5%와 22.0%씩 감소했다. 신규 출시된 BYD '씰 06'이 1만1490대로 단숨에 5위를 꿰찼고, BYD '씰'(1만301대)도 38.9% 늘어나며 상위권 진입 대기 중이다.

중형 이상 세그먼트가 확장되는 데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수요 증가도 한몫 한다. 최근 PHEV 기술 고도화로 1회 충전 시 순수 전기 주행거리가 70~80㎞까지 늘어나며 유지비 절감 효과가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자동차 전문 매체 오토모티브는 "유럽 내 중대형 SUV는 소형 SUV에 이어 PHEV 수요가 두 번째로 큰 부문"이라며 "순수 전기차와 PHEV가 중대형 SUV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며 과거 디젤차의 위상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유럽에 진출해 있는 브랜드들은 중대형차 라인업을 보강하고 있다. 스텔란티스는 중국 파트너사인 립모터와 둥펑이 생산하는 중대형 모델을 유럽 시장에 출시할 예정이다. 립모터는 스텔란티스 마드리드 공장에서 중형 모델 두 개를, 둥펑은 프랑스에서 대형 모델을 제작할 예정이다. 푸조는 지난 4월 베이징 모터쇼에서 공개했던 중형 SUV 콘셉트카를 조만간 양산할 예정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 리오토는 오는 10월 프랑스 파리모터쇼를 통해 유럽 시장에 본격 진출할 예정인데, 첫 번째 모델로 중형 크로스오버인 'i6'를 낙점했다. 업계에서는 아우디 'Q4 E-Tron', BMW 'iX3', 폴스타 '폴스타 4' 등과 경쟁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i6의 차량 길이는 4950㎜로 Q4 E-Tron과 iX3보다 200~300㎜ 길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는 중형 이상 세그먼트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중대형 SUV 중 상위 10위권에 현대차와 기아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 9을, 기아는 쏘렌토를 판매 중이다.

중형 세단에서는 기아 'K4'가 1~5월 4141대 판매되며 중형 세단 상위 8위에 이름을 올렸다. 현대차 '아이오닉6'는 2050대 판매되며 10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전년 동기 대비 3.2%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