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국내 자동차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격변의 시간을 보냈다. 내수 시장을 견인하는 현대차가 이례적인 부진을 보인 가운데, 테슬라의 질주가 시작됐다. 여기에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에 중국 BYD까지 가세하면서 전기차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래 모빌리티의 시작점인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이 처음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올해 상반기다. 상반기를 뒤흔든 9대 장면을 정리한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모습./ 뉴스1

①안방서 흔들리는 현대차… 테슬라 '질주'

한국 자동차 업계를 이끄는 현대차가 올해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이례적인 부진을 겪었다. 1~6월 현대차의 국내 판매량은 31만671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0.8% 감소했다. 4월엔 28년 만에 처음으로 기아에 1위 자리를 내주는 등 지난 2월부터 6개월 연속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다.

현대차가 주춤한 틈을 타 테슬라가 약진하고 있다. 테슬라의 올해 상반기 판매량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192.2% 늘어난 5만6139대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 올해 1월 두 차례에 걸쳐 주요 모델의 가격을 인하한 것이 한 몫을 했다. 테슬라는 BMW와 메르세데스-벤츠를 제치고 1위를 달리고 있다.

② 캐즘 끝 보인다… 신차 4대 중 1대는 전기차

테슬라에 중국 전기차 비야디(BYD) 등이 가세하면서 국내 전기차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차 신차 등록 대수는 19만8969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2.6% 증가했다. 전체 등록된 신차 중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도 11.1%에서 23.3%로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각 브랜드의 가격 경쟁에 더해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도 전기차 확대를 부추겼다. 업계에선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정체)이 끝나고 판매량 확대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이에 기아는 올해 상반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이 7만2078대로 역대 상반기 최다 실적을 거두기도 했다.

③ 그랜저에 iX3, 라브4까지… AI 달고 똑똑한 신차 '러시'

주요 자동차 브랜드가 베스트셀링카의 새로운 버전을 올해 상반기에 잇달아 출시했다. 현대차는 '국민 세단' 그랜저의 부분변경 모델을 3년 6개월 만에 선보였다. BMW는 차세대 비전인 '노이어 클라쎄'가 적용된 첫 양산차, 전기 중형 SUV '더 뉴 iX3'를, 도요타는 브랜드 대표 SUV '올 뉴 라브(RAV)4'를 각각 한국 시장에 공개했다.

이들 신차는 국내 시장이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으로 본격적으로 전환을 알리는 출발점이다. SDV는 스마트폰처럼 출고 이후에도 원격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 성능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함께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탑재돼 음성으로 차량을 간단히 조작할 수 있게 됐다.

BMW의 순수 전기 SUV 'iX3'./BMW코리아 제공

④ 최대 143만원 인상 효과… 개소세 인하 결국 종료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된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가 6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개소세가 3.5%에서 5%로 인상됨에 따라 승용차 구매자는 세 부담이 최대 143만원까지 늘어난다. 현대차 '더 뉴 그랜저'를 예로 들면, 가장 저렴한 프리미엄 트림(가솔린 모델) 가격이 기존 4185만원에서 4250만원으로 65만원 상승했다.

자동차 업계는 실질적 가격 인상 효과가 발생하는 만큼, 신차 출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단 이는 내연기관차에 한정된다. 전기차는 여전히 최대 300만원까지 개소세를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오는 12월까지 유지된다.

⑤ 휴머노이드 로봇 시대 성큼… 노조는 반발, 주가는 껑충

올해 1월 현대차가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로 인해 국내 자동차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미국에 로봇 생산 거점을 만들고, 향후 제조 현장에 단계적으로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새로운 노사 갈등 국면이 열렸다. 현대차 노조가 아틀라스 생산 현장 투입에 대해 "노사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다.

다만 자동차 기업의 미래 가치 측면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다. 오랜 기간 정체돼 있던 현대차 주가는 지난달 1일 종가 기준 75만원을 기록하며 연초 대비 150% 넘게 뛰었다. 로봇과 관련된 부품을 공급하는 현대차그룹 계열사 현대모비스와 HL만도 등의 고성장 전망도 잇따르고 있다.

⑥ 고환율에 車업계 '시름'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면서 자동차 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상반기 원달러 환율은 평균 1484.56원으로, 외환위기였던 1998년 상반기(1493.08원)에 이어 역대 상반기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수출 비중이 높아 원화 약세가 단기적으로는 이익 증가에 도움이 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생산비 부담이 늘고 수요 위축까지 겹칠 수 있어서다.

특히 수입차 업계가 고환율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BMW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경우 유럽과 미국에서 차량을 들여오는데,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은 독일 본사가 부담한다. 이에 BMW코리아는 고환율로 인한 수익성 악화를 방어하려는 본사 지시에 따라 지난달부터 준대형 세단인 '5시리즈'를 비롯한 주요 차종의 한국 가격을 전격 인상했다.

⑦ 벤츠 '직판제' 전격 도입에 수입차 업계 촉각

수입차를 대표하는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 4월부터 온오프라인 통합 '직접 판매 제도'를 도입했다. 기존 딜러사 위탁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본사가 직접 가격 결정권과 차량 재고를 관리하며 전국 어디서나 같은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위 수입차 업체 중 기존 딜러망 중심의 전통 판매 방식을 직판제로 전환하는 것은 벤츠가 처음이다. 중위권 업체 중에선 스텔란티스가 직판제를 도입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벤츠의 시도가 안착하면 BMW와 아우디 등 경쟁 브랜드 역시 가격 주도권을 본사로 가져오기 위해 판매 구조 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소비자 적응 기간 동안엔 판매량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올해 상반기 벤츠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8.6% 감소했다.

지커의 중형 SUV '7X'. /지커코리아 제공

⑧ 혼다 철수, 지커 상륙… 일본차 지고 중국차 뜬다

일본 혼다가 지난 4월 한국 시장 진출 23년 만에 철수를 전격 발표했다. 어코드와 CR-V 등을 앞세워 2008년 수입차 판매 1위를 차지했지만, 지난해엔 211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2020년 닛산·인피니티에 이어 일본차 브랜드가 또 한 번 한국 사업을 접게 됐다.

국내에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는 일본차와 달리, 중국차는 국내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비야디(BYD)는 올해 상반기 1만1765대를 국내에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807.9% 폭증한 것이다. 또 다른 중국 브랜드인 지커는 지난달 5일부터 중형 전기 SUV '7X'에 대한 사전 예약을 시작, 한 달 만에 예약 대수 1000대를 돌파했다.

⑨ 투자·배당 나선 韓GM, 판매량 신기록 쓴 KGM… 기지개 켜는 중견

국내 자동차 업계의 아픈 손가락이었던 중견 기업들이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한국 시장 '철수설'에 시달렸던 한국GM은 올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위기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한국GM은 지난 3월 국내에 총 6억달러(약 9200억원)를 투자하고, 2014년 이후 11년 만에 4조원대 규모 배당에 나섰다. 옛 쌍용차 시절 기업회생 절차까지 밟았던 KG모빌리티는 6월 판매량이 1만2000대에 달하며 3년여 만에 월 최대 기록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