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지난 1995년 설립돼 31년째를 맞이한 올해 남양연구소의 핵심 변화는 '효율'이었다. 연구소에선 가상 공간에서 차량의 성능을 확인하고, 데이터로 품질을 관리하는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차량 연구개발(R&D) 전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보안을 이유로 휴대전화를 비닐팩에 넣고 맨눈으로 과정을 확인했다.

현대차 기아 남양연구소 내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 모습. /현대차 제공

이날 처음 찾은 곳은 지난 2월 완공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였다. 270도 대형 스크린 앞에 운전석만 있는 검은색 차량이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차량이 속도를 높이니 스크린 속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차량이 왼쪽으로 코너를 돌자, 차량도 왼쪽으로 살짝 기울었고 운전자가 차량을 멈추자, 관성에 의해 앞으로 살짝 쏠리기도 했다. 차량 움직임에 따라 각종 데이터가 외부 8개 모니터로 실시간 전달됐다.

이 시뮬레이터는 가상 환경을 구현해 운전자 기반 평가를 제공하는 장치다. 새로운 양산 차량을 개발하기 전 프로토타입 차량을 만들고 주행하는 대신, 실제 도로와 차량을 가상으로 구현해 각종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다. 정필영 주행성능개발팀 책임은 이 시스템의 개발 이유로 "효율적인 의사 결정"을 꼽았다.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검증하는 데에만 두 달 여 기간이 걸렸는데, 이 장비를 통해 3일로 줄었다고 한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스튜디오. /현대차 제공

이 시뮬레이터에는 현대차·기아가 직접 개발한 소프트웨어가 탑재됐다. 차량이 달리는 도로는 남양연구소 트랙이다. 연구진이 경사와 요철, 과속방지턱, 아스팔트 알갱이까지 라이다로 스캔했다고 한다. 운전대를 돌리는 느낌뿐만 아니라 승차감까지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서다. 정 책임은 "남양연구소 트랙은 전 세계 도로를 다 구현해야 했다"며 "이런 정밀 지도를 바탕으로 차량 성능을 평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기아가 차량 개발에 이 장치를 활용한 건 지난 2019년부터다. 2020년 이후 출시된 양산 차량은 모두 이 시뮬레이터를 거친 셈이다. 특히 롤, 피치 등 회전 운동까지 구현된 덕에 현대 N, 그리고 제네시스 마그마 등 고성능 차량 개발에도 활용했다. 추후에는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개발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내 디지털 측정 센터(DMC). 작업자가 포터블 3D 스캐너로 차량을 스캔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디지털 측정 센터(DMC)도 효율적인 차량 개발을 위한 공간이었다. 양산되기 전 차량의 품질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장소다. DMC 3층에 있는 무빙 동적 검증장에 들어서자, 중형 스포츠 유틸리티차(SUV) 1대와 초고속 카메라 등 장비가 눈에 띄었다.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싼타페로 보이는 이 차량 문에는 20여개 마커가 달려 있었고, 초고속 카메라가 이를 비추고 있었다.

작업자가 차 문을 닫자, 차 문에 가해지는 압력 크기에 따라 다른 색상이 표시됐다. 차 문을 닫을 때 가장 강한 힘을 주는 손잡이 쪽이 붉은색, 압력을 덜 받는 이음새 쪽은 파란색으로 나타났으며, 부품이 움직이는 정도가 ㎜단위로 표시됐다. 개발 차량에 부착된 부품에 힘이 가해졌을 때 변형 정도를 확인하는 장면이다. 조립 과정이나 시험 중 생기는 부품의 미세한 움직임을 미리 확인해 불량을 예방하는 것이다.

현대차·기아 남양연구소 내 디지털 측정 센터(DMC). /현대차 제공

1층 완성차 복합 측정실에서는 작업자가 스포티지 전면부를 포터블 3차원(3D) 스캐너로 스캔하자, 그 옆 모니터에 전면부 형상이 초록색으로 나타났다. 불량 없이 제대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다. 돌출되거나 단차가 있는 부분은 붉은색으로 표시된다. 이렇게 나온 데이터와 설계상 데이터를 비교해 오차를 확인하는 것이다. 불량이 있는 부분을 바로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데 사용된다.

한진수 파이론트품질검증팀 팀장은 "완성차 단계에서 불량을 찾을 경우,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며 "모든 단계의 데이터가 있고, 보이지 않는 부분의 품질까지 데이터로 관리해 신속한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현대차·기아는 이 같은 데이터를 모은 서버를 구축해 차량 개발을 이어갈 예정이다.

같은 건물 4층에는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도 있다. 적층 제조는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현대차·기아가 3D 프린터를 도입한 1996년 이후 30년 만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에는 액상 레진을 경화해 부품을 만드는 폴리머 광중합셀,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는 WAAM 등 설비가 있다.

현대차·기아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 모습. /현대차 제공

그 중에서도 금속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쌓는 금속 분말 용융 설비는 이미 양산 단계에 활용되고 있었다. 6개의 레이저가 분말을 녹여 형상을 만들면 그 위에 다시 분말을 덮고 형상을 제작하는 적층 제조 설비다. 주로 주조나 프레스로는 제작할 수 없는 부품을 만든다. 남양연구소는 지난 2024년 이 설비로 단종된 모하비, 벨로스터의 엔진 흡입 부품을 제작해 소비자에게 공급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노바랩(NOVA Lab). 차세대 개방형 제어기 검증 체계를 통해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을 준비하는 공간이었다. ADAS뿐만 아니라 고성능 컴퓨터 기반 제어 역량, 차량의 통신 체계 등을 검증하는 곳이다. 이 공간을 통해 신차를 개발하기 전 평균 150~200건의 문제점을 찾아냈다고 한다.

현대차·기아 노바 랩(NOVA Lab). /현대차 제공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시험차가 제작되기 전, 차량 전체 시스템을 실물로 연결해 기능과 통신 등을 검증하는 최초의 단계"라며 "실차 제작에 앞서 통신 상태나 제어기 간 충돌 등을 미리 발견하고 개선해 SDV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디지털 기반 혁신 R&D 기술로 차량 개발 방식을 새롭게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