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시장에서 테슬라의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대해 놀랍다는 반응의 글을 소셜미디어(SNS)에 올리며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자동차는 물론 인공지능(AI), 로봇 시장에서 테슬라의 최대 적수로 부상하고 있는 현대차를 향해 '공개적 견제구'를 던진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맞수' 현대차 안방서 베스트셀링카 차지한 모델Y
11일 수입차 업계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지난 8일(현지 시각) 자신의 X 계정에 한국에서 모델Y의 인기를 다룬 글을 공유하면서 '한국은 대단하다(Korea is awesome)'고 치켜세웠다. 공유한 글에는 흰색 모델Y 차량과 태극기가 담긴 사진이 포함됐고, 머스크 CEO도 자신의 글 좌우에 태극기 이미지를 붙이며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모델Y는 지난달 국내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40.5% 급증한 8762대가 판매됐다. 특히 사상 최초로 수입차가 현대차·기아를 제치고 월별 단일 모델 기준 판매 1위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모델Y는 지난해 4월 출시된 부분변경 모델인 '주니퍼'다. 테슬라는 여기에 지난 4월 기존 5인승 모델에서 휠베이스(앞, 뒤 바퀴의 중앙 사이 거리)를 늘리고 3열을 추가한 6인승 차량인 모델Y L(롱바디)도 출시했다. 차체를 키우고 기능성을 높인 모델Y L은 쏘렌토 등 국산 인기 SUV의 수요를 흡수하며 테슬라의 점유율 확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델Y의 판매 실적은 하반기에도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현재 판매 중인 주력 차량인 모델Y 프리미엄에서 편의 사양을 줄이고 가격을 낮춘 모델Y 스탠다드가 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중국 브랜드인 지커가 한국에 진출하자 '맞불'을 놓기 위해 모델Y 스탠다드 출시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만약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기술인 FSD(Full Self-Driving) 기능이 탑재된 모델Y까지 국내에 들어올 경우 현대차·기아가 테슬라와 경쟁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델Y는 중국산이라 FSD 기능을 활성화할 수 없다. 테슬라가 미국산 모델Y를 한국에 보내겠다고 결정할 경우 FSD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 현대차, 엔비디아와 동맹 맺고 자율주행·로봇 시장 공략… 테슬라 압박
자동차 업계에서는 머스크 CEO의 이번 X 게시물 사실상 현대차·기아의 '안방'인 한국 시장을 모델Y를 포함한 테슬라가 석권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작성된 것으로 해석한다. 다방면에서 경쟁 관계인 현대차·기아에 대한 견제 심리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차·기아와 테슬라의 경쟁 구도는 점차 가열되고 있다. 독일이 전기차 기술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일본은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주력한 반면 현대차·기아는 일찍부터 전동화에 집중해 왔다.
그 결과 현재 현대차·기아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의 자동차 제조사 중 테슬라와 비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다. 현대차와 기아에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까지 합칠 경우 전기차 라인업은 테슬라보다 오히려 방대하다. 여기에 여러 부품 계열사를 거느린 현대차그룹은 두터운 수직계열화 밸류체인까지 갖춘 상황이다.
테슬라는 특히 현대차그룹이 최근 엔비디아와 손잡고 완전자율주행과 피지컬 AI 분야에서도 빠르게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 있는 점을 경계하는 상황이다.
테슬라는 완성형 FSD 기술을 이미 상용화했다. 반면 현대차·기아는 아직 완전자율주행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현대차그룹은 올 초 엔비디아 출신 박민우 사장을 신임 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로 영입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박 사장은 10일 사내 매체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협업과 자체 기술 개발의 투트랙 전략을 가동해 자율주행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완성차 업계에서는 그가 주도해 현대차가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분야에서 긴밀히 협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의 완성차 기술력과 데이터, 엔비디아의 AI 기술이 결합될 경우 고도의 완전자율주행 기술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
두 회사는 로봇 분야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인 '옵티머스'를 개발하는 등 피지컬 AI에 대해서도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2020년 미국의 로봇 제조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했고 올 초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여기에 엔비디아와 최근 동맹을 맺고 로봇을 포함한 피지컬 AI 분야에서의 기술 고도화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이달 한국을 찾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따로 식사를 하고 서울 양재동 본사를 방문하는 등 두 차례나 단독 회동을 가졌다. 그는 현대차가 전북 새만금에 조성하는 AI 밸리에 참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자율주행과 AI 시장에서 엔비디아는 하드웨어와 개방형 플랫폼 확장에 집중하는 반면, 테슬라는 칩과 소프트웨어, 최종 완제품까지 전 영역을 자체 개발하는 전략으로 경쟁하고 있다"며 "엔비디아와 현대차의 동맹이 앞으로 머스크 CEO에게는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