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바로 현대차의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 여러분이 전문성을 갖춘 모든 분야가 이제 AI(인공지능)와 결합하게 되고, 그 순간 폭발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러분의 좋은 친구,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큰 영광입니다. 엔비디아는 현대차를 사랑합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현대차그룹 양재사옥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같이 말하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직원들이 환호성과 박수를 쏟아냈다.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양재사옥에 황 CEO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가죽재킷을 입고 등장한 순간부터 현대차 직원들은 황 CEO의 이름 '젠슨'을 외치며 팬심을 드러냈다.
입고 있던 티셔츠에 사인을 받은 직원이 있는가 하면, 셀카를 함께 찍는 직원들도 많았다. 당초 황 CEO는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고 '피지컬 AI 시험장'으로 거듭난 양재사옥 로비를 15분간 돌아보기로 돼 있었는데, 직원들과 소통하느라 약 30분 동안 로비에 머물렀다.
전날 서울 을지로 평양냉면 식당에서 황 CEO와 '깜짝 오찬'을 가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날 황 CEO와 이틀 연속 회동했다. 정 회장은 양재사옥 로비의 조경을 담당하는 관수 로봇과 기아의 3륜자동차, 다목적차량 PV5 등에 대해 황 CEO에게 직접 설명하기도 했다. 로비 투어 내내 수많은 직원이 이들을 둘러싼 탓에 황 CEO의 장녀인 메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 이사가 함께 이동하던 장재훈 부회장을 감싸며 "제가 보호해 드릴게요"라고 웃으며 외치기도 했다.
황 CEO는 로비를 둘러보는 내내 "대단하다(Amazing)" "아름답다(Beautiful)"를 연발했다. 그는 "오늘 이곳에서 본 모든 것이 깊은 감동을 줬다"며 "모든 것이 독창적이고 혁신적이었으며, 현대차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엔지니어링 역량을 보여줬다"고 했다. 그러면서 "AI의 다음 물결은 모빌리티와 피지컬 AI이고, 이것이 미래"라며 "AI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 사람들을 위해 가치 있는 일, 생산적인 일을 수행하는 미래"라고 강조했다.
◇ 정의선 "새만금 AI 밸리 함께 하자"… 젠슨 황 "기꺼이 참여"
30분가량의 로비 투어를 끝낸 황 CEO와 정 회장은 오후 2시부터 자리를 옮겨 양측 경영진과 논의를 시작했다. 2시 30분쯤 다음 행선지인 네이버로 떠날 예정이었지만, 이를 훌쩍 넘긴 3시쯤에서야 황 CEO와 정 회장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양측은 전북 새만금을 중심으로 AI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투자가 더 들어갈 예정인데, 여기에 AI와 로보틱스가 들어가는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했다"며 "만약 참여할 의향이 있다면 함께해 완벽한 AI, 로보틱스, 데이터 센터 시스템을 같이 만들어내자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 CEO는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실리콘밸리가 있고, 현대차그룹은 'AI 밸리'를 발명하고 있다"며 "AI는 새만금을 위해 매우 중요한 기술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정 회장이 새만금 AI 밸리에 나를 초대했는데, 훌륭한 돼지구이 바비큐(삼겹살 맛집)가 있다면 기꺼이 참여할 것"이라며 말했다. 투자를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관심은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황 CEO는 한국이 AI 데이터 센터 구축을 위한 최적의 입지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자동차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처럼, AI를 생산하려면 AI 팩토리가 필요하다"며 "한국에는 많은 연구원, 많은 스타트업이 있고, 이곳의 로봇공학 산업은 매우 클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매우 대규모의 AI 인프라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황 CEO와 정 회장은 자율주행 모빌리티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황 CEO는 "정 회장은 항상 새로운 기술을 안전하게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형태의 모빌리티에 AI를 접목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고, 미래의 모빌리티는 정말 놀라울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엔비디아의 차세대 자율주행 플랫폼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을 도입한 바 있다.
산업 현장에 로봇공학 적용을 가속화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황 CEO는 "로보틱스를 산업화할 시기가 매우 가까워졌다"며 "현대차의 로봇 플랫폼을 더 널리 채택하고, 제조 현장에 더 잘 통합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고 했다.
◇ 금융 시장선 엔비디아의 보스턴다이내믹스 투자 가능성 제기
황 CEO는 이날 정 회장과의 회동에서 "이 새로운 시대에 AI의 다음 진화인 로봇공학을 이용하고 창조하기에 현대차보다 더 좋은 위치에 있는 곳은 없다. 모빌리티에서 로봇공학, AI 팩토리에 이르기까지 AI의 모든 다양한 분야에서 현대차와 파트너십을 맺게 돼 매우 흥분된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두 사람의 이날 회동이 엔비디아의 보스턴다이내믹스 투자로 이어질 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김진석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6~7월 중 소프트뱅크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엑싯(투자금 회수) 가능성이 있고, 이는 구글과 엔비디아 등의 전략적 투자(SI)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했는데, 당시 소프트뱅크는 현대차그룹이 2025년 6월까지 미국 기업공개(IPO)에 나서지 않으면 현대차 측에 보유 지분 9.5%를 넘길 수 있다는 풋옵션 계약을 맺었다.
현대차그룹은 이르면 3분기 중 미국에 로봇 훈련 거점인 '로봇메타플랜트응용센터(RMAC)'를 가동할 예정인데, 엔비디아는 현대차그룹과 협력해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로봇 액션 데이터를 활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임은영 삼성증권 팀장은 "엔비디아와 구글 모두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고도화를 위해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로봇의 액션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