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최고급 수공 자동차 제조사이자 롤스로이스,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명차 브랜드로 꼽히는 벤틀리가 오는 9월 말 한국 배터리가 탑재된 브랜드 최초의 전기차를 공개한다. 성능과 배기음, 장인정신이 조화를 이룬 '벤틀리다운 전기차'를 선보이기 위해 선택된 시점이다. 한국 시장에서는 새 전기차를 통해 '중장년 자산가의 전유물'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퍼포먼스를 앞세워 새로운 세대와 고객층에게 다가간다는 계획이다.

프랑크-슈테판 발리저 벤틀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9일(현지시각)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크루에 있는 고객 경험 공간 '더 뮤즈'에서 아시아·태평양 취재진을 만나 "9월 말 공개될 굉장히 흥미진진한 차량을 준비 중"이라며 "기존 모델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라인업에 새로운 모델을 추가하는 것이라 벤틀리에 매우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프랑크-슈테판 발리저 벤틀리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9일(현지시각)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크루에서 아시아·태평양 취재진을 만나 전기차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윤정 기자

벤틀리 내에서 코드명 'D-LUV'로 불리는 이 모델은 벤틀리 최초의 순수 전기차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의 배터리가 탑재되는데, 배터리가 방전 상태일 때 7분 내에 100마일(약 160㎞)의 주행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충전 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차 길이가 5m 이내로, 발리저 CEO는 이를 두고 '미니 벤테이가(벤틀리의 대형 SUV)'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발리저 CEO는 "성능은 벤틀리답게 매우 강력할 것이고, 실용성 측면에서도 '도심형 SUV'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완성차 브랜드에 비해 첫 전기차 공개가 늦은 편이지만, 이에 대해 발리저 CEO는 "의도적인 선택에 가깝다"며 "벤틀리는 단순히 전기차를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하게 벤틀리다운 전기차'를 선보일 수 있는 시점을 선택했다"고 했다. 브랜드의 본질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을 때, 시장에 이를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뒀다는 것이다. 발리저 CEO는 "타이밍 자체가 벤틀리의 선택이고, 그 선택이 곧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벤틀리의 전기차는 무엇이 다를까. 발리저 CEO는 '사운드'를 특히 강조했다. 그는 "모든 벤틀리는 고유의 사운드를 가져야 하고, 전기차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며 "그 사운드는 반드시 벤틀리 브랜드에 걸맞아야 한다"고 했다. 벤틀리는 낮고 묵직하게 깔리는 중저음의 바리톤 울림이 특징으로, 다른 브랜드의 경쾌하거나 날카로운 배기음과 차별화를 두고 있다.

여기에 발리저 CEO는 "(전기차의 등장으로) 엔진과 진동, 배기음이 사라진 이후에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결국 벤틀리다움"이라며 "벤틀리는 세계 최고의 인테리어를 제공하는 브랜드이고, 우리의 장인정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발리저 CEO는 특히 한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은 (신기술을) 매우 얼리 어댑팅(일찍 수용하는)하는 곳이자,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좋은 지표"라며 "전기차는 한국에 럭셔리와 현대적 기술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개인적으로 기대가 크다"라고 말했다. 실제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4월 말 국내 전기차가 전체 승용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4%로, 2020년 말(1.9%)과 비교하면 11배로 뛰었다.

전기차를 통해 한국 고객군도 넓어질 것으로 봤다. 발리저 CEO는 "대부분의 브랜드는 럭셔리 또는 퍼포먼스 중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 별도의 에디션이나 멀티 브랜드 전략을 활용하지만, 벤틀리는 매우 럭셔리한 동시에 스포티한 차량을 하나의 차량 안에서 구현하는 매우 드문 브랜드"라며 "새로운 전기차를 통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고객층과 새로운 세대에 다가갈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판매량 제고는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못 박았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벤틀리코리아의 지난해 국내 판매량은 393대로 2023년 기록한 연간 최대 판매량(810대)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발리저 CEO는 "벤틀리는 일관되게 '희소성'이 럭셔리의 중요한 요소라고 보고 있다"며 "고객과의 대화 역시 단순 판매량이 아닌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차량', '차별화된 브랜드 경험'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집중할 때, 성과는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발리저 CEO는 "벤틀리는 한국 시장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매우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안목 있는 한국 고객들에게 '차량을 직접 경험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직접 운전해 보고, 사양을 구성해 보면서, 그 주변에 구축된 모든 요소를 확인해보길 바란다"며 "벤틀리 전기차는 '전기차이기 이전에 벤틀리'이고, 이것이 저희가 설정한 우선순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