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첨단 항공 모빌리티(AAM·Advanced Air Mobility)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동맹을 맺었다. 현대차는 지난 수 년 간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집중했지만, 전문 항공 모빌리티 업체와 협업한 도요타 등 경쟁사들이 앞서 나가자 결국 KAI와 손 잡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KAI가 지난 2022sus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서 공개한 UAM 형상. /KAI 제공

23일 모빌리티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 8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장재훈 부회장과 KAI의 김종출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항공용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항공 모빌리티 기체 공동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번 MOU에는 기체 개발부터 양산까지 AAM 상용화의 전 과정에서 협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KAI는 AAM 기체, 현대차그룹은 항공용 전동화 파워트레인 개발을 각각 담당한다. 두 회사는 이미 글로벌 AAM 시장의 현황 조사와 개발 방향에 관한 논의 등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 현대차 '독자노선' 답보… 도요타는 美 조비 손잡고 인증 절차 돌입

AAM은 현대차그룹의 주요 미래 신사업 중 하나로 꼽힌다. 현대차는 정의선 지난 2020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정의선 회장이 직접 나서 "AAM 사업에 투입될 개인용 비행체(PAV·Personal Air Vehicle) 개발을 최대한 신속히 완료해 2028년쯤부터 상용화하는 게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AAM 기술 개발을 위해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오랜 기간 일했던 신재원 사장을 총괄 책임자로 영입했다. 2021년에는 미국에 항공 모빌리티 개발 자회사인 슈퍼널을 설립하고 지금껏 약 1조원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총괄 수석부회장)이 지난 2020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 미디어 행사에서 미래 모빌리티 사업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대차 제공

그러나 이후 6년 여가 지난 현재 현대차그룹의 AAM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기체 개발은 콘셉트 모델 정도만 개발이 된 상태로 앞서 정 회장이 목표 시점으로 제시했던 2028년 상용화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신재원 사장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지난해 8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현대차그룹의 AAM 사업이 답보 상태에 빠진 사이 외부 모빌리티 업체들과 손잡은 경쟁 완성차 기업들은 빠르게 속도를 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이미 인증 절차를 밟으며 상용화를 눈 앞에 둔 상황이다.

도요타는 미국의 AAM 스타트업인 조비 에비에이션에 지난 2020년부터 총 8억94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뒤 꾸준히 단계별로 앞서 나가고 있다. 지난 2월에는 기체 양산 강화를 위해 도요타 생산 시스템 인력 200명을 조비의 공장에 파견하기도 했다.

현재 조비는 배터리 기반 에어택시에 대한 FAA의 감항 인증을 밟고 있다. 감항 인증은 항공기 성능이 비행 안전에 적합한 지를 일컫는 '감항성(堪航性)'을 평가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 인증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실상 비행 허가서에 해당된다. 국내에서는 국토교통부가, 미국에서는 항공연방청(FAA)이 각각 주관한다.

도요타와 조비는 현재 매달 에어택시를 1대 생산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올해 조비 공장에 파견된 도요타 인력들이 AAM 기체 생산에 대한 숙련도를 쌓을 경우 내년에는 생산량이 월 4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스텔란티스도 지난 2021년 미국의 아처에비에이션과 함께 시장에 뛰어들었다. 작년 말 조지아주 공장 확장 등을 위해 6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아처가 기체를 만들면, 스텔란티스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식이다. 양 사는 올해 미국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에어택시 시범 운항 프로그램 시작을 목표로 인프라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부품사 니넥도 브라질 항공기 제조사 엠브라에르에서 분사한 이브 에어 모빌리티와 전동화 항공기 파워트레인을 생산하는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슈퍼널이 22일 열린 영국 판버러 국제 에어쇼에서 공개한 AAM 실물 콘셉트 'SA2'./연선옥 기자

◇ KAI와 맞손… 韓·美서 까다로운 감항 인증 받는데 유리

모빌리티 업계에서는 KAI와의 협업을 통해 현대차그룹이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AAM 시장에서 경쟁사들을 따라잡는 발판을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AAM 시장 진입을 위해선 까다로운 감항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KAI가 높은 기술력을 갖춰 인증을 받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KAI는 국내에서 민·군 항공기 모두 감항 인증을 받은 유일한 기업이다. 군용 분야에선 한국형 헬기 수리온이나 KF-21 전투기, FA-50 등이 있다. 민수용 항공기에선 KC100을 통해 감항 인증을 받았었다. KC100은 4인승 소형 항공기로 KAI가 인증을 위해 개발한 기체다. 당시 국내 감항 인증은 FAA와 동일한 기준으로 진행됐다. 한국과 미국은 양자 간 항공 안전 협정을 체결한 국가여서, 국내에서 인증을 받으면 미국에서도 인정된다.

AAM은 규정이 촘촘하게 마련된 여객기와 달리 수직 이착륙 전용 항공기로 새로운 제품에 해당돼 설계 초기부터 FAA의 안전 기준을 세밀하게 충족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모빌리티 업계 관계자는 "완성된 기체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설계부터 안전성을 검증하는 것이라 감항 인증은 매우 까다로운 절차에 해당된다"며 "현대차그룹이 KAI와의 협업으로 모빌리티 사업에서 속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