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오전 경남 창원의 마산 가포신항. 8만6987㎡(2만6313평) 규모의 야적장에 제너럴모터스 한국사업장(한국GM)이 생산한 트랙스 크로스오버(트랙스) 7500여대가 줄지어 있었다. 모두 북미 등 전 세계 시장으로 가기 위해 선적을 기다리는 차다. 선박에서 떨어질 수 있는 이물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보닛을 하얀색 부직포로 씌웠고, 전면 유리에는 도착 지역의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트렉스들은 비상등을 켠 채 한 번에 7~8대씩 끊임없이 이동했다. 사람이 직접 운전했다. 목적지는 부두에 정박해 있는 현대글로비스(086280)의 캡틴호다. 배에 도착하면 차량 간 전후방 30㎝, 좌우 10㎝ 수준의 안전거리를 두고 밴드와 고리(후크)를 이용해 단단히 고정한다. 이날 이 배에 실릴 트랙스는 총 350대다. 오후에 입항할 현대글로비스의 코멧호에는 2000대가, 또 다른 배에 나머지 물량이 선적돼 북미 등으로 떠난다.
마산 가포신항이 지난 2015년 처음 문을 연 뒤, 경남 수출 허브가 될 수 있었던 건 한국GM의 트랙스 덕분이다. 가포신항에서 선적되는 전체 물량 중 55%가 트랙스다. 수출을 앞둔 차량이 대기하는 가포신항의 야적장은 총 17만3975㎡(5만2627평)인데, 조선비즈가 찾은 이날 야적장 절반이 트랙스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야적장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기아(000270)의 EV5도 보였다. 가포신항 관계자는 "환적(換積·목적지가 아닌 항구에서 다른 선박에 화물을 옮겨 싣는 일) 물량"이라고 설명했다.
트랙스가 만들어지는 곳은 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한국GM 창원공장이다. 총 부지 면적 73만1000㎡인 이곳은 트랙스를 생산하는 GM의 소형 SUV 생산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트랙스는 작년 한 해 글로벌 시장에서 29만6658대 팔렸는데, 특히 미국에서만 26만4855대가 판매됐다. 트랙스의 미국 소형 SUV 시장 점유율은 27%였다.
한국GM은 그 비결로 자동화를 꼽았다. 자동화 공장이 만들면 바로 항구로 향하는 구조인 것이다. 지난 2019년 GM이 약 9000억원을 투자하며, 창원 공장 부지 내에 8만㎡ 크기의 도색 공장을 새로 지었고, 프레스 설비와 용접 로봇 등 생산 기반을 최신화했다.
전날 찾은 한국GM 차체 공장에서는 산업용 로봇 팔이 불꽃을 튀기며 은색 차량 뼈대에 후드를 용접하고 있었다. 지난 2022년 11월 완공 직후 공개됐을 때와 달리, 노란색 로봇 팔에는 검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용접으로 인해 나는 탄 내음이 코를 스치기도 했다. 그만큼 공장이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다는 의미다. 창원 공장에서는 1시간에 트랙스 60대를 생산할 수 있다. 분당 1대씩 완성되는 셈이다. 연간 생산 가능 물량은 28만대다.
창원 공장은 용접만 자동화된 게 아니다. 부품을 분류하는 것부터, 타이어를 차체에 결합하는 것도 로봇이 한다. 한국GM은 이 차체 공장에 빈 피킹(bin picking) 시스템을 도입했다. 로봇 팔이 3차원(3D) 비전 카메라를 활용해 부품을 골라 집어 공정에 투입하는 자동화 기술인데, 로봇 팔이 부품을 집어 1초가량 응시한 뒤 위치에 가져다 놓기도 했다. 부품뿐만 아니라 차체 프레임도 인식할 수 있다.
조립 공장에서 눈에 띈 자동화는 휠과 타이어를 장착하는 로봇 팔이었다. 로봇 팔이 너트와 타이어를 순차적으로 집은 뒤, 행거에 매달려 오는 차량을 기다린다. 위치에 도착하자 신속하게 타이어를 끼워 넣고 너트를 돌렸다. 너트부터 결합까지 불과 30초면 끝난다. 부품을 집는 순간부터 결합까지 차량은 멈추지 않았다. 이 로봇 팔들은 타이어도 구분한다. 인공지능(AI)이 아닌 입력값에 따른 것이다.
이 설비들과 전면 자동화된 도장 공장, 5250t급 프레스 설비 등 덕분에 한국GM의 창원 공장은 GM 내에서 '마더 팩토리'로 불린다. 전 세계에 있는 GM의 다른 공장들이 창원 공장의 설비와 운용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이동우 한국GM 국내 생산총괄 부사장은 "GM이 글로벌에서 처음으로 시도한 부분들로, 다른 해외 공장에서도 견학을 온다"며 "하이브리드차(HEV)나 전기차 등으로 전환은 버튼만 누르면 가능해, 차세대 차종 생산에도 문제 없다"고 말했다.
창원공장에서 생산돼 가포신항을 통해 수출되는 트랙스는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한국GM은 강조했다. 한국GM은 GM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수출되는 규모가 연간 1조4000억원 정도인데, 이 중 25%가 경남 지역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방선일 한국GM 구매 부문 부사장은 "창원공장이 글로벌 전략 핵심 기지인 이유"라고 했다.
한국GM의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생산·수출을 위한 공급망 규모는 작년 기준 5조5000억원이며, 국내 1차 협력사 수만 1600여개, 직원 수는 26만명에 달한다.
한국GM 관계자는 "'한국GM 경영정상화'의 한 축으로 생산되기 시작된 트랙스가 2023년부터 3년 연속 수출 1위를 기록하며 '스테디셀러'가 됐다"면서 "지역과 협력사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