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의 수급난으로 인해 부품 생산에 차질이 생긴 데다, 최근 차량 5부제 시행으로 수요마저 감소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은 최근 국내 완성차 5개사의 1차 부품 협력사 700여 곳의 원자재 재고 현황 조사에 착수했다. KAICA 관계자는 "대부분 업체들이 재고 물량이 있어 당장 생산 차질이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전쟁이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 중"이라고 말했다.

나프타 수급 차질로 인해 가동을 중단한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 공장./뉴스1

KAICA가 자동차 부품 업계의 원자재 재고 관리에 나선 것은 중동 사태 여파로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겨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늘었기 때문이다. 헤드램프와 범퍼를 비롯해 각종 스위치류, 실내 매트 등 수많은 자동차 부품은 나프타를 가공해 만든 플라스틱과 합성고무, 합성섬유 등으로 만든다.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이미 자동차 업계에 나프타를 공급하는 미쓰비시화학그룹이 플라스틱 가격을 인상하기 시작했다.

타이어 업계도 원자재 수급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타이어는 천연고무와 합성고무, 카본블랙 등이 원재료로 무게의 약 60% 이상이 석유에서 추출되는 성분으로 이뤄진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당장 끝난다고 해도 원자재 수급이나 가격이 과거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며 "대체 공급처를 최대한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힌 데 이어 유럽 수출의 길목으로 통하는 홍해 항로까지 이용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점도 자동차 업계의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예멘의 친(親)이란 무장단체인 후티 반군은 지난 28일(현지 시각) 이란을 도와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로 인해 이들의 주 근거지인 홍해 관문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상태다.

홍해를 통해 수에즈 운하로 이어지는 항로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적의 물류 경로다. 지난 2023년 11월에도 후티 반군이 홍해를 봉쇄했을 때 수에즈 운하로 통하던 물류는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우회해야 했고, 물류비도 20% 이상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는 중동 물류 차질에 따라 생산 축소에 돌입했다. 닛산은 규슈 후쿠오카현 공장에서 이달 1200대 규모를 감산할 예정이고, 도요타도 4월까지 중동 수출용 차량 약 4만대의 생산을 줄이기로 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휴대전화와 반도체 등 다른 주력 수출 품목의 경우 부피가 작아 비행기로 운송이 가능하지만, 자동차와 타이어 등은 배로 실어 보내야 한다"며 "코로나 사태 당시 선임비가 8배 정도 뛰면서 큰 타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 업계의 우려가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관세에 물류비 상승까지 겹쳐 올해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 화성의 기아 화성EVO플랜트 이스트(East) 타이어 장착 자동화 공정. /현대차그룹 제공

유가 상승에 따라 정부 주도로 실시하고 있는 차량 5부제가 업계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늘고 있다. 차량 부제는 차량 번호 끝자리를 기준으로 특정 요일에 자동차 운행을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공공기관 관용차와 직원의 개인 차량만 5부제가 시행되고 있는데, 정부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130달러 선으로 오를 경우 이를 민간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날 국제 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115달러까지 상승했다.

타이어 제조사의 매출은 최근 신차용 타이어가 30%, 교체용 타이어가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으로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차량 5부제가 확대 시행될 경우 타이어 교체 수요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타이어 업계 관계자는 "다른 자동차 부품들은 교체 주기가 되면 바로 바꿔야 하지만, 타이어는 마모가 되지 않으면 재구매를 미루는 경우가 많다"며 "전쟁 장기화로 자가용 이용량이 계속 줄어들면 타이어 수요 역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