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047810)산업(KAI) 지분을 5% 가까이 사들이면서 KAI의 민영화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KAI 민영화 논의는 2000년대 들어 수차례 반복됐지만 매번 실패했다. 현재까지 KAI 지분 매각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한화그룹의 이번 KAI 지분 인수가 양사 간 협력 강화로 끝날지, 민영화 초석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16일 공시한 사업보고서에서 지난해 10월 KAI 지분 4.41%를 매입했다고 밝혔다. 한화에어로 자회사인 한화시스템이 지난해 11월 사들인 KAI 지분 0.58%를 더하면 한화그룹이 보유한 KAI 지분은 4.99%가 된다. 486만400주로, 전일 종가(19만1200원) 기준 9293억원어치다. 한화그룹은 이번 인수로 KAI 4대 주주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월 한화시스템 제주우주센터를 방문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한화그룹 제공

한화그룹이 KAI 지분을 보유하는 것은 7년여 만이다. 한화에어로는 2016년 1월 KAI 지분 4.01%(390만주)를 매각한 데 이어 2018년 7월 5.99%(584만7511주)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털어낸 바 있다. 한화그룹은 2015년 KAI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던 삼성테크윈을 인수하면서 강력한 KAI 인수 후보로 떠올랐지만, 이후 남북한 화해 모드가 형성되는 등 방산 재편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자 KAI 지분 전량을 처분했다.

◇ KAI 민영화 시도, 정권 바뀔 때마다 반복

KAI 민영화 논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차례 반복 제기됐다. KAI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삼성항공산업·현대우주항공·대우중공업의 항공 부문을 통합해 출범했다. 2003년 대한항공(003490)이 대우의 KAI 지분 28.1%를 전량 매수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KAI 인수 직전까지 갔지만, 인수 조건에 대한 양측의 견해 차이 등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대우그룹이 무너질 때 산업은행이 대출금을 KAI 주식으로 받아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한국항공우주본사 전경. /한국항공우주 제공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기업 민영화 일환으로 KAI 지분 매각이 거론됐지만, 국가 방위 핵심인 항공우주 기술이 민간으로 넘어간다는 안보 우려와 인수 후보 부재, 정치적 반대 등으로 번번이 어그러졌다. 현재 KAI의 최대 주주는 26.41%를 보유한 한국수출입은행이고, 국민연금공단이 8.20%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 지분이 30%가 넘어 사실상 공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사장이 바뀌었다. 역대 8명의 사장 중 내부 출신은 단 한 명에 불과하다. 강구영 전 사장은 새 정부 출범 첫날인 지난해 7월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8개월 만에 내정된 신임 사장 후보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때 이재명 캠프 스마트강군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일한 김종출 전 방위사업청 국방기술보호국장이다.

◇ 한화그룹, KAI 지분 추가 매입 나설까… 민영화 움직임은 아직

한화그룹은 KAI 지분을 재매입한 이유로 "항공·우주 분야 수출 경쟁력을 키우고, 미래 사업 협력 차원"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KAI 민영화 논의에 다시 시동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분으로 엮이면 회사 간 관계가 안정적일 수는 있겠지만, 현 수준의 협력은 지분이 없어도 가능하다"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이 여기서 멈출 생각으로 지분 매입에 나서진 않았을 것"이라며 "민영화 논의 등 상황을 지켜보고 추가적으로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다만 KAI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하기까지는 시일이 필요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 정부는 아직 KAI 민영화 검토를 시작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최근 KAI 주가가 크게 올랐다는 점도 한화그룹을 비롯해 인수 희망자들에게 부담이다. KAI 주가는 이날 오전 10시 25분 현재 20만500원을 기록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KAI 민영화 작업이 시작되면 한화그룹 외 다른 방산 업체들도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