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 옛 송도 유원지에서 중고차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압둘라 사피아(35)씨는 지난 6일 조선비즈와 만나 현재 선적하지 못한 차량이 20대가 넘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보냈던 물량은 이달 초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지금껏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기 중"이라며 "컨테이너 1대당 300달러의 추가 비용을 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국내 중고차 업체들의 중동 수출이 막혔다. 매입한 차량을 선적하지 못해 물량이 적체되고 수출용 중고차의 가격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수출업체들은 현 상황을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리비아 화폐 가치 폭락, 이집트 정부의 수입 통제, 시리아·요르단에 대한 중국 중고차의 저가 공세 등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최근 호조를 보였던 대(對)두바이 수출까지 막히게 됐기 때문이다.
9일 중고차 업계에 따르면 두바이가 핵심 수출 지역으로 부상한 건 지난 2023년부터다. 두바이 프리존(자유무역지구)이 다른 중동 국가들보다 거래하기에 안전하다는 평가가 늘면서 전세계 중고차 판매업체들이 몰렸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 바이어들은 두바이에서 수입 중고차를 매입해 주변국으로 2차 수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두바이로 향한 중고차는 총 6만5749대로 전체 중고차 수출 지역 중 4위를 기록했다. 중동 국가(UAE·요르단·사우디)로 좁히면 수출된 전체 물량(12만3241대)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수출 금액 규모는 약 6981억원이었다.
떠오르는 수출 지역이었던 두바이로 향하는 뱃길이 막히자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손실이 계속 불어나는 상황이다. 특히 송도 유원지에 입주한 업체들의 타격이 크다. 송도 유원지에는 700여개 업체가 모여 있는데, 이 중 70% 정도가 중동에 중고차를 수출한다.
탁성열 캐러밴 무역 대표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기 전 중동으로만 매달 150~200대의 중고차를 판매했다"며 "이달 들어서는 하루에 한 대 정도만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 사태가 발발하기 전 매입한 중고차들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어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찾은 송도 유원지에는 중동보다 아프리카나 서아시아 국가 고객이 많았다. 중동에서 온 한 바이어는 전쟁으로 승용차보다 1t(톤) 트럭의 수요가 늘었다고 귀띔했다.
이곳에서는 계약이 체결돼 자동차 앞 유리에 '솔드 아웃(Sold Out)'이라 적혀 있지만, 선적되지 못한 차량이 많이 눈에 띄었다. 지난달 두바이에서 인기가 높은 메르세데스-벤츠 차량 30대를 매입했는데, 수출 길이 막혀 곤란한 상황에 놓인 업체도 있었다.
수출업체들은 국내에서 중고차를 매입하면 차량 등록을 말소한다. 말소 처리가 되면 1년 안에 수출만 해야 한다. 수출을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물고 매입한 차량도 폐차할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 될 경우 큰 손실을 떠안을 수 밖에 없어 근심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고차 수출업체 관계자는 "매입한 차량을 어떻게 처리할지 계산이 안 서 머리가 아프다"고 토로했다.
업체들은 이란과 미국의 전쟁 뿐만 아니라 최근 몇 년 간 중동 내에서 발생한 각종 악재로 손실이 누적됐다고 입을 모았다. 연 20만대 이상의 차를 수출했던 지역인 리비아는 화폐 가치가 폭락해 수출 규모가 줄었다. 이집트는 2024년, 시리아는 지난해부터 각각 정부가 중고차 수입을 규제하고 있다.
탁 대표는 "2021년과 2022년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2024년에는 예멘 정부군과 후티 반군의 분쟁 영향으로 중고차 수출이 위축됐었다"고 말했다. 사피아씨는 "시리아와 요르단에서는 최근 값 싼 중국 중고차들이 들어와 한국 중고차가 팔리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중고차 수출 감소의 영향으로 자동차 부품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중고차 수출업체들은 폐차 직전의 차량을 매입하면 이를 현지에서 수리하기 위해 부품도 함께 사서 보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수출길이 막히면서 부품 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신현도 중고차리서치 연구소장은 "지난해 중소기업들의 수출 품목 1위가 중고차였다"며 "정부와 지자체가 국제 정세에 따른 위기를 타개할 대책을 만들지 못할 경우 '수출 효자 상품' 하나가 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