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가 최대 60조원에 달하는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 수주전에 뛰어든 한국을 향해 재차 '자동차 투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한화그룹의 전방위 투자 카드에 더해 현대차그룹이 '수소 생태계' 협력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캐나다는 일단 현대차그룹의 이러한 계획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쟁 상대인 독일이 폴크스바겐 배터리 공장을 앞세워 총공세에 나선 만큼 한국도 구체적 투자 로드맵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 2일 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조달특임장관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찾아 "(잠수함 수주전은) 누가 캐나다에 가장 최선의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이라며 "한국과 독일은 모두 자동차 제조국이고, 이런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방산을 넘어 더 큰 경제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초계 잠수함 프로젝트(CPSP) 수주전의 주요 심사 기준 중 하나가 각국의 자동차 분야 투자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스티븐 퓨어 캐나다 국방조달 특임장관(가운데)이 지난 2일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해 이두희 국방부 차관(왼쪽 첫 번째),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왼쪽 두 번째)와 함께 생산시설을 둘러봤다. /한화오션 제공

이미 잠수함 수주전의 직접 수혜자인 한화는 그룹 차원의 역량을 결집해 전방위적인 총공세에 나섰다. 한화오션과 한화시스템은 지난달 26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철강, 인공지능(AI), 우주 등 5개 분야 현지 기업들과 전략적 투자·산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배수진을 쳤다.

특히 한화오션은 캐나다 최대 철강 업체인 알고마 스틸과 손잡고 현지 강재 생산 시설 구축과 잠수함 유지·보수·정비(MRO) 인프라 확대를 위해 약 3억4500만캐나다달러(약 3660억원) 규모의 직접 투자를 약속했다. 방산 수주를 넘어 캐나다 미래 산업 생태계를 공략한 메가 패키지를 승부수로 던진 셈이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KPMG는 한화의 이 같은 산업 협력이 실행될 경우, 2040년까지 캐나다 전역에서 누적 20만명 이상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 현대차, 수소 협력안 제시… 캐나다 "가려운 곳 긁어줬다" 긍정 평가

이제 캐나다 잠수함의 키는 현대차그룹이 쥐고 있다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일단 수소 생태계 협력 카드로 캐나다의 점수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지난달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주도하는 캐나다 전략경제협력 특사단에 직접 참여, 수소 생태계 전반에서 캐나다와 협력 가능성을 점검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은 수전해 설비(현대차(005380)) 등 생산부터 저장(현대모비스(012330)) 및 운송(현대글로비스(086280)), 활용(현대차·기아(000270)·현대로템(064350)·현대제철(004020))까지 생태계 전반의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 정부가 이전에 직접적으로 언급했던 '자동차 공장'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현지 생산 물량을 받아줄 만큼 시장 규모가 받쳐줘야 하는데, 캐나다는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캐나다 시장조사업체 데로지에에 따르면 지난해 캐나다 자동차 판매량은 190만대로, 2017년 최대치(204만대)를 기록한 이후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600만대가 넘는 미국 자동차 시장과 비교해도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캐나다에 있던 기존 자동차 공장들도 차례로 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규 진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수소 생태계 협력안은 캐나다 정부가 요구하는 자동차 공장 설립 등 직접 투자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에너지 안보 강화와 산업 구조 재편이 시급한 현지 상황에 비춰볼 때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캐나다 측 일부는 한국 측의 협력안을 두고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는 긍정적 평가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캐나다는 현재 미국과의 갈등으로 철강 산업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데다, 독자적인 에너지 개발이 절실하지만 투자 역량이나 기술 경험이 부족해 고심해왔기 때문이다. 정부와 업계 안팎에서는 현재까지 독일과의 수주 경쟁이 박빙 양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6일 서울 강서구 김포 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캐나다로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 독일 '배터리 공장' 기선제압에… 韓 실질적 투자 로드맵 고심

다만 독일이 폴크스바겐의 배터리 공장을 앞세워 수주전의 기세를 잡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 적지 않은 부담이다. 이번 잠수함 수주전과는 별개로 폴크스바겐은 이미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대규모 배터리 셀 공장을 건설 중이다. 캐나다 정부는 이를 독일 측의 핵심 기여 사례로 언급하며 한국에도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독일 중 한 곳이 수주전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 약속을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도 한국 산업계가 고심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 역시 캐나다 측에 구체적인 고용 규모를 약속할 수 있는 자동차 공장 설립안을 언급하기보다, 한국 측 움직임을 보며 치밀한 전략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 측은 캐나다 정부가 산업 협력의 핵심 고리로 자동차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투자 패키지 안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소 생태계 담론을 유지하면서도 캐나다가 요구하는 실질적인 고용과 투자 수치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가 승부처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독일보다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는 접근이 필요해 직접 투자가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지 기업들이 정부와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해 투자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