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가 올해부터 차종별 수익 '점수표'를 국내 영업 현장에 적용한다. 이에 따라 대표 경차인 캐스퍼와 그룹 미래 기술력을 상징하는 수소차 넥쏘 대신, 비싸고 수익성이 높은 제네시스 등에 판매 역량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관세와 경쟁 심화 등의 상황에선 단순 판매량보다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의 실용주의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국내사업본부는 올해부터 차종별 수익 점수표인 '믹스 인덱스'를 전격 도입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는 차량 대부분의 수익 기여도를 따져 0~4점 사이 점수로 등급화한 것이다. 현대차는 이 점수표에 따라 각 영업본부의 성과를 책정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단순 판매량이 아닌, 마진을 최우선 기준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그래픽=손민균

점수표를 보면, 현대차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대형 세단 G90과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V80이 가장 높은 4점을 받았다. 대당 마진이 가장 많이 남는 '최고 고부가가치' 차량들로, 영업 현장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판매해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이어 준대형 세단 G80(3.71), 중형 SUV GV70(3.63), 준대형 SUV 팰리세이드 2세대(LX3) 하이브리드(HEV)(3.32), 팰리세이드 LX3(3.01) 등이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현대차그룹의 수소 기술력과 지속 가능한 미래 비전을 상징하는 수소 중형 SUV 넥쏘 2세대는 0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넥쏘의 공식 판매 가격은 7600만~8300만원대로, 동급 차종인 싼타페(3600만~4700만원)보다 2배 수준이지만, 그만큼 생산 단가가 높다. 수소 인프라 등의 문제로 판매량 제고도 어려운 만큼,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차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현대차 대표 경차인 캐스퍼(·0.43)와 글로벌 누적 판매 1000만대를 달성한 준중형 세단 아반떼(0.94), 전기 준중형 SUV 아이오닉5(0.97) 등도 0점대를 받아 사실상 전략 차종에서 제외됐다.

배터리 조달 비용이 높은 전기차들도 낮은 점수를 피하지 못했다. G80 EV(1.77), 코나 EV(0.74), GV70 EV(1.9)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HEV는 얘기가 다르다. 아반떼 HEV(1.27), 그랜저 HEV(2.6), 코나 HEV(1.61), 투싼 HEV(1.26) 등은 가솔린 모델보다 0.3~0.6점가량 높게 책정됐다.

지난 6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을 둘러보고 있는 정의선(가운데) 현대차그룹 회장과 호세 무뇨스(오른쪽) 현대차 대표./뉴스1

업계에서는 무뇨스 사장이 '돈 되는 경영' 기조에 본격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본다. 무뇨스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후 첫 주주총회에서 "권역별 최적화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수익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선 제네시스와 고성능 N 브랜드, 대형 상용차의 판매 비중을 확대하고, 미국에선 제네시스와 HEV에 힘을 실은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차 전반의 비용 최적화도 꾸준히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국내 시장의 경쟁 격화가 있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량이 30만대를 돌파하고, 테슬라가 인기 모델 가격을 대폭 인하하는 등 현대차의 안방 점유율을 조금씩 갉아먹는 요소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당장 점유율을 방어하려면 가격 인하 등을 통해 판매량을 공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의미 없는 출혈 경쟁에 합류하기보다는 내실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도 무뇨스 사장의 이러한 방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1조4679억원으로, 1년 전보다 19.5% 감소했다. 시장 전망치(-12.6%)를 밑도는 수준이다. 미국에 관세를 내는 데만 4조1100억원을 쓰면서 수익성이 급감했다. 올해 영업이익률 목표는 6.3~7.3%를 제시했는데, 미국 관세와 글로벌 경쟁이 상수가 된 상황에서 지난해(6.2%)보다 높여야 한다.

다만 이러한 조치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축소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성과를 잘 받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 자동차인 아반떼와 경차 캐스퍼 등보다 고수익 차량 위주로 영업이 이뤄질 수 있다"며 "이러한 대중 차종에 소홀해질 경우, 현대차의 '국민차' 이미지가 약화되고 고객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