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 시각)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다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가 또다시 중대한 경영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그의 발언이 현실화 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관세 부담 규모는 연간 3조원 가까이 증가하고, 로보틱스와 자율주행 기술 등 여러 신성장 사업에 투자할 여력도 약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한국산 자동차와 목재, 의약품 등 기타 모든 상호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며 "한국 국회가 미국과의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명확한 인상 시점을 언급하진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 이른바 대미(對美)투자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7월 관세 상한을 15%로 설정하고 한국의 대미 투자를 확대하는 내용의 무역 협정을 타결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11월 비준(승인) 동의안을 발의했지만, 지금껏 본회의 통과가 이뤄지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4월 한국을 비롯한 자동차 수출국들에게 부과하는 관세를 25%로 인상했다. 이후 각 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해 관세를 낮췄는데, 현대차·기아 등 한국산 자동차는 11월부터 관세가 15%로 낮아졌다.
지난해 말 관세 부담을 덜어내고 최근 로보틱스 사업과 자율주행 개발 등에 집중하던 현대차그룹은 다시 암초를 만나게 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의 관세 인하 조치로 올해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해 왔다. 한화투자증권은 현대차의 관세 부담 추정치를 연간 6조5000억원(25% 부과시)에서 3조9000억원(15% 부과시)로 낮춘 바 있다. 기아의 경우 3조9000억원(25% 부과시)에서 2조4000억원(15% 부과시)으로 경감된다고 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064850)에 따르면 증권가는 현대차의 올해 매출이 전년 대비 4.5% 늘어난 196조원, 영업이익은 8% 늘어난 13조4400억원으로 전망했다. 기아의 매출은 5.2% 늘어난 120조원, 영업이익은 11.6% 상승한 10조1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관세가 다시 25%로 올라갈 경우 전망은 크게 바뀔 수 밖에 없다. 25%의 관세가 그대로 반영됐던 지난해 3분기에 현대차는 1조8000억원, 기아는 1조2000억원의 관세 비용을 각각 떠안았다. 지난해의 경우 현대차·기아는 미국에 대규모 재고를 비축해 둔 덕에 관세 부담을 줄일 수 있었지만, 현재는 재고도 바닥난 상태로 알려졌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발간한 '자동차 산업 점검'을 통해 미국의 자동차 관세가 25%로 유지될 경우 현대차그룹의 연간 관세 비용이 연간 8조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로 고율 관세가 반영된 시기에 현대차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3분기에 현대차의 전체 판매량은 103만8353대로 전년 대비 2.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5373억원으로 29.2% 급감했다. 관세를 판매 가격에 반영하지 않아 차를 많이 팔고도 오히려 손해를 본 장사를 한 것이다.
25%의 관세 부과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 한국GM의 철수설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한국GM은 매출의 대부분을 대미 수출이 차지하기 때문에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국내에서 공장을 가동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관세가 25%로 인상될 경우 북미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경쟁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수 밖에 없다"며 "특히 현대차·기아, 한국GM의 국내 생산에 의존하는 부품사·협력사들은 고사(枯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GM 협력사 단체인 협신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GM의 1차 협력사는 276곳에 이른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캐나다 잠수함 프로젝트 지원을 위해 캐나다에 머물고 있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미국으로 이동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과 동행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장재훈 부회장도 미국으로 이동하거나 화상회의 등을 통해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