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에 대해 '합의 없는 투입 불가'를 선언했다. 로봇이 들어오면 고용 충격이 불가피한 만큼, 이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노조가 단체협약에 근거해 공장 자동화 등을 멈춰 세운 사례가 있는 데다,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노란봉투법'도 근로 조건에 영향을 주는 사안은 쟁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어 노조의 실력 행사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노조의 로봇 반대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생산 공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2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소식지를 통해 "현대차에 인건비 절감을 위한 인공지능 로봇 투입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분명히 경고한다. 노사 합의 없는 신기술 도입은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했다. 2028년까지 아틀라스 3만대 양산 체제를 구축해 미국에 로봇 생산 거점을 만들고, 향후 제조 현장에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공장 배치 여부는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 일찌감치 방어 태세에 돌입한 것이다.
◇ 근로 조건에 영향 미칠 경우 단협 근거해 노사 합의해야
완성차 업계와 노동계에서는 현대차 노조의 경고가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생산 공정에 로봇을 투입할지 여부는 기업의 경영상 판단이지만, 이로 인해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칠 경우 노조가 개입할 권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현대차 단체협약 제41조 1항을 보면 '회사는 신기계·기술의 도입, 신차종 개발 및 차종 투입, 작업 공정의 개선, 경영상 또는 기술상의 사정으로 인한 인력의 전환 배치, 재훈련 및 제반 사항은 계획 수립 즉시 조합에 통보하고 고용안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의·의결한다'고 명시돼 있다. 미국 등 해외 공장에 대한 사안은 대상이 아니다.
현대차그룹 노조가 고용 안정을 이유로 사측에 합의를 요구하며 국내 공장을 멈춰 세운 사례는 이미 많다. 지난 2011년 현대차가 신형 'i30'을 출시하며 생산 라인을 자동화하고, 남는 인력 74명을 다른 공장으로 이동시키려 하자 노조는 한 달 넘게 생산을 중단했다.
지난해 11월 완공된 기아의 경기 화성 전기차 공장도 노조와 합의하는 데만 1년가량 시간을 보냈다. 전기차 공장은 부품 수도 적고 자동화된 공정도 많아 필요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조는 이를 메우기 위해 연 생산 대수를 10만대에서 20만대로 늘리고, 기존 고용 인원을 보장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요구는 대부분 관철됐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2019년에도 울산 공장을 디지털화할 때도 노조의 반대로 1년가량 연기됐다"며 "실제 국내 공장에 로봇이 도입되기까지는 시간이 있지만, 이에 대한 노조의 반발은 당연한 수순이고, 시간을 들여 사측과 협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로봇 도입을 반대하지 않더라도 근로 조건 변경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고, 노사 간 눈높이가 맞지 않을 경우 결국 로봇 도입이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 노란봉투법 덕에 협상 없이 바로 쟁의도 가능
노사 간 협상 단계를 건너뛰고 현대차 노조가 직접 제동을 걸 수 있는 법적 근거도 갖췄다. 오는 3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노동조합법 2·3조,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그 수단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노동 쟁의 대상에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 결정'이 포함돼 있다. 근로 조건에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지가 판단 근거인데, 로봇이 공장에 들어오면 기존 인력이 재배치될 가능성이 큰 만큼 노조는 쟁의 권한을 높은 확률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현대차 노조가 로봇 도입을 저지하는 데 거의 100% 활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로봇 도입은 일종의 생산 방식의 변경으로, 근로자의 전환 배치와 정리 해고 등 근로 조건 변경으로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지금까지는 이를 노사 협의로 해결했지만, 노란봉투법은 이를 교섭 사안으로 격상시켰다"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에 따르면, '사업경영상 결정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근로자 지위 또는 근로 조건의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은 사업경영상 결정이라도 단체교섭 대상이 된다'고 명시돼 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도 "노란봉투법으로 로봇 도입과 같은 결정도 교섭 대상인지에 대한 해석 논란이 있겠지만, 갈등 촉발은 불가피하다"라며 "현대차 노조의 '합의 없이는 단 한 대도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 빈말은 아닌 것"이라고 했다.
◇ 가격 경쟁력 약화 불가피… 韓 생산 공동화 가능성도
현대차가 당장 국내 공장에 로봇을 도입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노조 반대 등을 우려해 도입 자체를 검토하지 않거나 미뤄질 경우, 결국 국내 자동차 산업과 수출 경쟁력만 약화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장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 있다. 이 연구위원은 "이미 중국은 로봇으로 원가를 대폭 낮췄고, 이를 통해 가격 경쟁에 나서고 있다"며 "현대차가 지금은 한국 시장을 지키고 있지만, 값싼 중국산 전기차가 들어오면 1위 사업자는 계속 유지하더라도 점유율은 하락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이 어려워질 것으로 이 연구위원은 내다봤다.
국내 일감도 결국 줄어드는 수순을 밟을 수 있다. 박 교수는 "중국은 물론 미국도 자동화에 한창"이라며 "낙후된 공장 대신 자동화된 해외 공장으로 물량이 다 넘어가 한국 생산은 공동화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