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2026 도쿄 오토살롱' 현장인 일본 도쿄 인근 지바현 컨벤션 센터 마쿠하리 멧세. 이른 아침부터 도요타그룹 고성능 브랜드 '가주 레이싱(GR)'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포츠카 'GR GT'와 'GR GT3'의 시험 주행을 보기 위해 수만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성인 허리 높이도 채 되지 않는 낮은 차체의 이 검은 스포츠카들은 야성미가 넘쳐흘렀다. 폭발적 엔진음과 날카로운 드리프트 실력에 관객들은 '스고이(굉장하다)'를 연신 외쳤다.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드넓은 행사장 주변을 주파하는 엄청난 속도도 자랑했다.
하얀 연기와 매캐한 타이어 타는 냄새를 헤치고 GR GT에서 내린 드라이버는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의 장남, 도요다 다이스케 우븐바이도요타 수석 부사장이었다. 그는 "노면이 젖어 있는 상태라 다소 긴장했지만,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굉장한 파워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즐거웠다"고 했다. 동승한 드라이버는 "원래 도넛(드리프트로 지면에 남기는 원형 타이어 자국)은 만들지 않기로 했는데, 다이스케가 해냈다"며 "속도도 계획보다 빠른 시속 250㎞ 이상을 내더라"라고 했다.
도요타그룹이 17년 만에 세 번째 스포츠카 플래그십 모델을 공개하며 고성능차에 대한 야심을 드러냈다. 일상생활 속 달리는 재미를 추구하는 GR GT와 이기고자 하는 프로 드라이버의 최우선 선택지를 지향하는 GR GT3가 그 주인공이다. 도요타그룹은 이들을 앞세워 '모터스포츠를 통한 더 좋은 차 만들기' 철학을 한층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고성능차 개발에 공을 들일수록 양산차 기술 수준이 향상되고, 자동차 관련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는 아키오 회장의 지론이다.
◇ 세 번째 플래그십 모델 GR GT… 650마력 내는 일상 속 스포츠카
GR GT는 1967년 '도요타 2000GT'와 2009년 '렉서스 LFA'의 뒤를 잇는 세 번째 플래그십 모델이다. 각각 약 350대, 500대 한정 생산됐던 2000GT와 LFA는 일본의 기술력과 장인 정신이 집약된 기념비적 차량이다. 도요타 관계자는 "GR GT는 도요타그룹의 새로운 도전을 뜻한다"며 "LFA와 비교하면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다른 차가 됐다"고 했다.
GR GT는 도로 주행이 가능한 레이싱카다. 프로 드라이버만큼은 아니지만, 아마추어보다는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가진 '젠틀맨 드라이버'를 위해 개발됐다. 시속 320㎞까지 속도를 낼 수 있고, 최고 출력은 650마력에 달한다. 이러한 성능을 위해선 ▲낮은 중심 ▲경량·고강성 ▲공기 저항 최소화 등이 필요했다.
도요타 관계자는 "운전석 등 자동차를 구성하는 여러 장치의 중심을 최대한 낮췄다"며 "그룹 최초로 전체 알루미늄 바디를 사용해 튼튼하면서도 가볍게 만들었고, 공기 저항 없이 어떻게 주행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다. GR GT의 차 높이는 1195㎜에 불과하고, 공차 중량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비슷한 1750㎏이다.
GR GT3는 이러한 GR GT를 기반으로 만든 모델이다. 대회에서 승리를 목표로 하는 드라이버는 물론,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는 레이스카를 지향한다. GR GT3의 구체적 제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차 높이는 GR GT보다 조금 낮은 1090㎜로, 엔진 배기량은 GR GT와 같은 3998cc로 개발되고 있다. 도요타 관계자는 "내년 중 (GR GT와 GR GT3를) 출시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 경제성 대명사 도요타, 어쩌다 고성능차에 빠졌나
도요타는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개념을 전 세계 산업계에 전파한 기업으로, 실용적인 자동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런 도요타그룹에 고성능차는 사실 어울리지 않는 사업이다. 개발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반면, 많이 팔 수 없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 도요타그룹 사내 기업인 GR은 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키오 회장은 '모리조'라는 이름의 드라이버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GR GT 개발 전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하는 등 고성능차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는 2007년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 레이스 도전이 계기가 됐다.
당시 도요타그룹 내 제대로 된 레이싱카가 없던 때로, 회사 공식 업무로 인정받지 못해 도요타 이름을 떼고 '팀 가주'로 출전했다. 트랙 위에서 타사 차량에 추월당할 때마다 아키오 회장은 '도요타는 이런 자동차 못 만들지?'라는 말을 듣는 듯한 뼈아픈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분노'는 도요타그룹을 움직였다. 이날 다이스케 수석 부사장은 "그때 느낀 분함 그 자체는 없앨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고성능차가 개선되면 균형이 틀어지고, 그렇게 나온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 또 부족한 부분이 생긴다"며 "어느 수준에서 그만할 수도 있겠지만, 억울함과 아쉬움은 개발을 계속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런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도요타그룹의 고성능차 개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능차 기술력이 있어야 양산차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아키오 회장의 생각이다. 'GR 야리스'가 대표적이다. 세계 랠리 선수권대회(WRC)용으로 개발된 GR 야리스는 이후 양산차로 역설계됐다. 도요타그룹 관계자는 "고성능 스포츠카 개발을 위해 많은 도전을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이러한 기술들이 모두 양산차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인재 육성을 위해서도 고성능차 개발이 필수적이다. 아키오 회장은 엔지니어들이 직접 레이스 현장에서 차가 부서지는 것을 보고, 초단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도요타그룹 관계자는 "모터스포츠는 단순히 운전 기술을 겨루는 장이 아니라, 차량을 직접 제어하고 주행감을 체득하며 스스로 조정·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인재 개발의 장"이라며 "차량 자체를 이해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무대인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