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가 시작한 전자식 문 손잡이가 세계 곳곳에서 안전성 지적을 받고 있다. 차체 표면에 매립돼 있어 공기 저항을 덜 받고 디자인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지만, 비상 시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가 최악의 경우 인명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서다. 사고가 이어지자 미국은 조사에 착수했고, 중국은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완전 매립형 문 손잡이를 퇴출시키기로 했다. 한국은 국제 기준이 마련되는 대로 관련 논의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29일 국토교통부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산하 자동차기술기준조화포럼(WP29)은 자동차의 전자식 문 손잡이에 대한 안전 규제를 논의하고 있다. 이 포럼은 세계 각국 교통당국이 연 3회씩 모여 자동차 관련 국제 표준을 제정하는 자리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전문분과에서 논의되고 있는데, 통상 1~2년 안에 결론이 난다"며 "국제 기준이 채택되면 한국도 (관련 규제) 의무화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식 문 손잡이는 테슬라가 처음 도입한 디자인으로, 보통 전기차에 많이 채택된다. 밖으로 튀어나와 있는 기존 손잡이와 달리, 평소엔 차체 안에 숨어 있다. 스마트키를 소지하고 차량에 접근하거나 손잡이 부분을 만지면 문이 열리거나, 손잡이가 밖으로 튀어나오는 방식이다. 차량 측면이 튀어나오지 않고 매끈해 공기 저항을 줄일 수 있다. 미래 지향적이고 깔끔한 외관도 장점이다. 다만 저온 등에서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되거나 충돌 등 사고로 시스템이 고장 날 경우 손잡이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테슬라 등 수입차뿐만 아니라 국산차에서도 이러한 손잡이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현대차(005380)에서는 아이오닉5·6·9와 디 올 뉴 넥쏘 등 전기·수소차는 물론 그랜저와 같은 내연기관차에도 이러한 전자식 손잡이가 적용돼 있다. 기아에서는 EV3·4·5·6·9 등에 전자식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에 테슬라 등은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기계식 문 열림 장치를 두고 있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내 결함조사국(ODI)은 테슬라 '모델3'의 기계식 문 열림 장치 관련 결함 조사에 착수했다. 한 테슬라 모델3 소유주가 차량 화재가 발생했을 때 문이 열리지 않아 발로 문을 차고 겨우 탈출했다며 조사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소유주는 해당 장치가 "숨겨져 있고, 표시도 없으며, 비상시 직관적으로 찾을 수 없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NHTSA는 지난 9월에도 2021년식 테슬라 '모델Y' 차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소비자 신고 9건을 접수해 예비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당시 소비자들은 테슬라의 전자식 문 열림 장치가 갑자기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차 안에 있는 어린이가 기계식 문 열림 장치를 작동시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0년간 충돌 후 화재가 발생한 테슬라 차량에서 탑승자나 구조대가 문을 열지 못해 사망자가 나온 사례가 최소 12건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전자식 문 손잡이에 대해 선제적으로 규제에 착수한 나라도 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지난 16일 '자동차 차문 손잡이 안전 기술 요구'와 '전기차 안전 요구' 등에 대한 국가 표준 초안을 공개하고 지난 23일 의견 수렴을 마쳤다. 이 표준에 따르면, 트렁크를 제외한 차량 모든 문에 기계식 잠금 해제 기능이 있는 외부 손잡이가 장착돼야 한다. 신차는 2027년 7월 1일부터 이 표준을 충족해야 하고, 기존 차들은 2028년 7월 1일까지 이에 맞춰 시정해야 한다.
중국 소비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전자식 문 손잡이에 대한 불만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어린이 손가락 끼임 사고는 2024년 기준 전년 대비 132% 증가했다. 이 외에도 ▲저온 작동 불량 ▲충돌 후 문 개폐 불가 ▲장애인 사용 어려움 등의 불만이 잇따랐다. 관영 중국중앙TV(CCTV)는 "(이번 표준 제정으로) 완전 매립형 문 손잡이가 시장에서 단계적으로 퇴출된다"며 "과학기술적 디자인이 '안전 함정'으로 전락한 것"이라고 했다.
논란이 잇따르자 테슬라는 최근 심각한 충돌이 감지될 경우 차량 문이 비상 접근을 위해 자동으로 잠금이 해제되는 기능을 소개했다. 다만 이에 대해 블룸버그통신은 "이 기능이 언제부터 제공되고 어떤 모델에 적용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테슬라 측은 모든 지역이나 모든 차량에 적용되지 않을 수 있고, 생산 일자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다를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한국은 국제적 기준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자동차 업계가 자발적으로 문 손잡이 관련 안전을 강화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국토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은 매년 실시하는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 올해부터 '충돌 후 탈출·구출 안전성' 항목을 신설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관련 규제가 국내에 도입될 경우 국내 자동차 기업들은 이를 따르겠지만, 문제는 테슬라와 같은 미국 기업들"이라며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라 미국 기준을 통과하면 한국 기준과 맞지 않아도 수입된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