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V)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종료,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차 퇴출 철회 등이 겹치면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전략을 대폭 수정하고 있다. 수십조원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전기차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포드가 대표적이다. 당분간 글로벌 전기차 전환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이럴 때일수록 투자의 고삐를 놓지 않겠다는 기업도 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완성차 기업 포드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F-150 라이트닝' 픽업트럭 등 대형급 전기차 모델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F-150 라이트닝은 한때 '견인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으로 불리며 차세대 주력 모델로 평가받았지만, 지난달 미국 내 판매량이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70% 넘게 줄어든 1000여대 수준에 그친 바 있다. 포드는 대신 휘발유 및 하이브리드차, 저가 전기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의 사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번 전략 변경으로 2027년까지 195억달러(약 28조8000억원)의 손해를 보게 됐다.

포드의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 기지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전기차 전략을 재검토하는 것은 다른 완성차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스텔란티스는 램 전기 픽업트럭 개발 계획을 철회하고 고연비 V8 엔진 생산을 재개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16일부터 전기차인 ID.3를 생산하던 독일 드레스덴 공장의 문을 닫았다. 창사 88년 만의 첫 독일 공장 폐쇄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포르셰의 전기차 개발 취소 등으로 47억유로(약 8조2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기차만 판매하는 기업들은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2년 연속 글로벌 판매량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테슬라의 올해 1~10월 글로벌 판매량은 약 130만대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7.7% 줄었다. 최근 테슬라는 새로운 전기차 모델보다 자율주행 로보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 등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 BYD 역시 1~10월 약 332만대를 판매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점유율은 지난해 23.3%에서 현재 19.4%로 떨어지는 등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는 최근 전기차 캐즘과 업계 경쟁 심화에 정책적 변화까지 맞물린 영향이다. 미국은 지난 9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전기차 세액 공제(최대 7500달러) 정책을 종료했다. 이 영향으로 미국 내 11월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급감했다. 여기에 EU마저 2035년부터 사실상 내연기관차 판매를 전면 금지하기로 한 방침을 철회하고, 제한적으로 내연기관차 생산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글로벌 전기차 전환 속도는 현저히 늦춰질 수밖에 없다.

다만 미래 전기차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관련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는 곳도 있다. 제너럴모터스(GM)의 메리 바라 회장은 지난 3분기 실적 발표회 때 "전기차는 여전히 우리의 북극성"이라며 "새로운 배터리 기술과 새 디자인, 구조적 개선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수익성 향상을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 상황에 맞춰 전기차를 감산하느라 3분기 기준 12억달러(약 1조8000억원)의 손해를 봤음에도 전기차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영국은 EU와 달리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내연기관차를 퇴출하겠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이에 닛산이 최근 영국 선덜랜드 공장에서 신형 전기차 리프의 생산을 시작하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프는 2020년 이후 영국에서 생산되는 '첫 번째 대량 생산 전기차'가 될 것"이라며 "영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제도에 따라 (리프는) 3750파운드(약 700만원)의 할인이 적용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