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이 2030년까지 5년간 125조2000억원을 국내 인공지능(AI)·로봇·수소산업 등에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의 국내 투자 중 사상 최대 규모다. 현대차·기아(000270) 1차 협력사의 올해 대미 관세를 전액 지원하는 등 자동차 산업 생태계 안정화에도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16일 현대차그룹은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관련 민관 합동 회의가 종료된 뒤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29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미국의 자동차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지자 정의선 회장은 "이번에 국가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고 그 신세를 꼭 갚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실제 대규모 투자로 답한 것이다.

이재명(오른쪽) 대통령과 정의선(왼쪽)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대통령실 제공

현대차그룹이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간 국내에 투자하는 125조2000억원은 사상 최대 규모다. 직전 5년(2021~2025년) 89조1000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36조1000억원이 늘었다. 연평균 25조400억원씩 투자하는 것으로, 직전 5년 연평균 투자액(17조8000억원) 대비 40% 이상 증가한 액수다.

투자 계획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미래 신사업 분야에 50조5000억원이 투입된다. AI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전동화, 로보틱스, 수소 등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해 지속 성장 기반을 확고히 한다는 구상이다.

기존 모빌리티 산업 경쟁력 지속 강화를 위한 후륜 기반 하이브리드 시스템 등 연구·개발(R&D) 투자에 38조5000억원을, 경상 투자에 36조2000억원을 각각 책정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조성하는 통합 본사 건물인 '글로벌 비즈니스 콤플렉스(GBC)'는 서울시 인허가 절차가 완료되는 대로 건설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모빌리티 생산 중추 거점으로서 한국 위상도 더욱 공고히 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완성차 생산 공장의 수출 지역을 다변화하고, 국내 전기차 전용 공장을 글로벌 마더팩토리 및 수출 기지로 육성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내년 울산 전기차 전용 공장을 준공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난해 218만대였던 국내 완성차 수출량을 2030년 247만대로 늘리고, 전동화 차량 수출량은 지난해 69만대에서 2030년 176만대로 2.5배 이상으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이번 대규모 중장기 국내 투자 결정은 그룹의 근원적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차원"이라며 "글로벌 모빌리티 혁신 허브로서 대한민국의 위상 강화, AI·로봇 산업 육성 및 그린 에너지 생태계 발전 등을 통해 국가 경제 활력 제고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현대차그룹 제공

◇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건립… 수소 AI 신도시 조성 검토

특히 이번 투자는 국내 AI·로봇 산업 육성과 그린 에너지 생태계 발전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먼저 고전력 'AI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AI 데이터센터는 피지컬 AI(센서와 카메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로봇, 자율 주행차 등에서 생성되는 AI 학습 데이터 저장이 가능한 페타바이트(PB)급 데이터 저장소를 확보한다.

피지컬 AI 생태계 발전을 담당할 '현대차그룹 피지컬 AI 애플리케이션 센터' 설립도 추진한다. 이곳에서 AI를 통해 로봇의 완성도 및 안전성을 검증하고, 실제 산업 현장 투입 전 신뢰성을 최종 검증하게 된다.

이렇게 확보한 고객 맞춤형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 공장'도 조성하기로 했다. 자체 로봇 제품 생산과 중소기업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파운드리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품 협력사의 로봇 부품 분야 R&D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그린 수소 생산을 위한 수전해기 개발 등에도 투자한다. 현대차그룹은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남권에 1GW(기가와트) 규모 고분자 전해질막(PEM) 수전해 플랜트를 건설하고, 인근에 수소 출하 센터와 충전소 등 관련 인프라를 구축할 예정이다. 또 PEM 수전해기 및 수소연료전지 부품 제조 시설을 건립하고, 이를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정부, 지자체 등과 협의해 AI, 수소, 차량-사물 간 통신(V2X) 등 핵심 신기술을 접목한 수소 AI 신도시 조성을 위한 투자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기존 완성차 및 부품 공장에 향후 5년간 수십 종 신차 투입을 위한 라인 고도화에 지속적으로 투자한다. 현대제철은 고로 효율 향상을 위한 투자에 수천억원을 투입하고, 현대엔지니어링은 전기차 충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충전소 등 인프라를 전국에 확대 설치한다.

◇ 1차 협력사 올해 대미 관세 전액 지원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 1차 협력사가 올해 실제 부담하는 대미(對美) 관세를 소급 적용해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협력사가 부품 등을 현대차그룹 미국 생산 법인(HMGMA,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기아 조지아 공장 등)에 공급하는 과정에서 실제 부담하는 관세를 매입 가격에 반영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총 지원 규모는 향후 1차 협력사의 수출 실적 집계 후 확정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대미 관세 지원은 협력사의 운영 자금 확보와 유동성 개선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협력사 경영 안정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직접 거래가 없는 2·3차 중소 협력사 5000여곳을 위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 안정화를 위한 신규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 규모도 확대하기로 했다.

여기에 국내 자동차 산업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협력사의 원자재 구매와 운영 자금 확보, 이자 상환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들의 해외 판로 개척과 수출 확대를 위한 다양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중장기 국내 투자와 끊임없는 혁신으로 대한민국 경제 활력 제고에 기여할 계획"이라며 "협력사 관세 지원과 상생 협력 프로그램을 확대해 국내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도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