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70원선까지 오르면서 현대차(005380)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 고율 관세로 인한 손실을 다소 덜게 됐다. 그러나 달러화 강세가 장기화될 경우 원가도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비용도 증가할 수 밖에 없어 달갑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
16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4일 원·달러 환율이 이틀 연속 달러당 1475원을 찍으며 외환당국이 구두개입에 나섰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9월 24일 1405원으로 거래를 마친 후 지금껏 1400원대를 기록 중이다. 최근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의 매도 물량이 늘면서 환율 상승 폭은 더욱 커지고 있다.
◇ 현대차·기아, 美 관세 타격 30% 만회
완성차 업체들은 보통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오르면 수익성이 개선된다. 한국에서 만들어 생산해 미국에 수출한 자동차는 물론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한 자동차도 판매 대금을 달러로 받기 때문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부터 수입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했다. 다만 일본은 미국과 무역 협정을 타결해 9월 16일부터 15%의 관세율을 적용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협정을 마무리하고 지난 9월 24일부터 미국에 15%의 관세만 내고 자동차를 수출 중이다.
반면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아직 타결하지 못한 한국은 여전히 25%의 자동차 관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8개월째 고율의 관세가 적용되면서 현대차·기아의 수익성도 눈에 띄게 악화됐다.
현대차는 3분기 매출액이 46조721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5373억원으로 29.2% 감소했다. 기아(000270) 역시 매출액은 8.2% 증가한 28조6861억원을 기록한 반면 영업이익은 1조4622억원으로 49.2% 급감했다.
금융 시장에서는 9월 중순 이후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빠르게 오름세를 보이면서 올 4분기 실적은 3분기에 비해 한층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현재 수준(1400원대)의 환율이 유지될 경우 현대차·기아는 관세 타격의 30%를 환율로 만회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또 미국 판매용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의 수익성도 한층 개선될 것으로 관측된다.
◇ 원자재가 상승에 판매 감소 우려… 대미 투자 비용도 급증
다만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00원 이상으로 장기간 지속될 경우 오히려 자동차 업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금융 시장에서는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400원대를 넘어 1500원대까지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ING는 최근 보고서에서 "해외 보유 자산의 증가, 한·미 양국이 합의한 매년 200억달러(약 30조원)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 등이 원화 약세와 달러화 수요 증가의 원인이 될 것"이라며 "환율이 1400원대에서 고착화될 것"이라 분석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신중한 통화정책이 강조되고, 미·중 통상 불확실성이 확대되면 환율은 1500원대로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는 고환율이 장기간 이어질 경우 부담도 생긴다. 우선 원가 부담이 서서히 커진다. 철강을 비롯해 완성차와 부품 생산에 필요한 각종 원자재를 수입할 때 대금을 달러화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곳은 자동차 부품사들이지만,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체 역시 조달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또 늘어난 비용을 완성차 가격에 반영할 경우 국내 판매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미국에서의 신규 투자에 대한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앞으로 4년 간 총 26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루이지애나주에 새로 건설하는 현대제철(004020)의 제철소 건설 비용만 58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적용할 15% 이상의 관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차·기아는 미국 현지 생산 비중도 늘려야 할 상황이다. 이 경우 생산 공장을 증설하고 근로자도 추가로 채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달러 강세에 따라 비용 증가가 예상된다.
판매 보증 충당금 부담이 늘어나는 점도 현대차·기아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판매 보증 충당금이란 자동차를 판매할 때 제공하는 무상 보증과 서비스 등에 대한 비용을 회계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 비용은 달러화로 적립되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면 원화로 환산되는 충당금 규모도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