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둔화)을 넘어 장기간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이 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이 지난 9월말 종료된 후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했고, 중국도 최근 정부가 전기차 지원을 줄이기로 하면서 성장 동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다.
미국의 전기차 전문 온라인뉴스인 아레나EV는 3일(현지 시각) 시장조사업체 JD파워와 S&P 글로벌 모빌리티의 통계를 인용해 지난달 미국의 순수 전기차 판매량이 전월 대비 57.3% 감소한 6만4000대에 그쳤다고 전했다. 전체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2%에서 5%로 크게 떨어졌다.
현대차(005380)의 지난달 미국 시장 내 전기차 판매량은 2503대로 전년 동월 대비 58.5% 줄었다. 기아(000270)는 66.4% 감소한 1331대를 기록했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합산 판매량은 3834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6% 감소했다.
포드의 경우 전기 픽업트럭인 F-150 라이트닝 등 주요 차종의 수요가 줄면서 전기차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25%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현대차, 기아, 포드 외에도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의 전기차 판매량이 전체적으로 크게 감소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지난달부터 급감한 것은 전기차 세액공제가 9월 말로 끝났기 때문이다. 미국은 그동안 전기차 구매자에게 최대 7500달러(약 1080만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했다. 세액공제는 당초 2032년 말까지 유지될 예정이었지만, 올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의회 다수당인 공화당이 폐지 시한을 7년 이상 앞당겼다.
중국 전기차 시장 역시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 전기차 제조사들은 오랜 기간 정부의 육성으로 빠르게 성장해 왔지만, 최근 과잉 생산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부가 지원을 줄이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난달 열린 제20기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확정한 '제15차 5개년 계획'에서 전기차를 전략적 신흥산업 목록에서 제외했다. 전략적 신흥산업은 중국 정부가 5년간 재정 지원과 각종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는 업종을 말한다. 전기차가 전략적 신흥산업에서 빠진 것은 지난 2015년 이후 10년 만이다.
중국이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기로 한 것은 최근 전기차 시장이 공급 과잉과 악화된 재무 건전성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최대 전기차 제조사 BYD는 지난 6월 막대한 재고 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대부분의 판매 모델에 두 자릿수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BYD에 이어 체리자동차, 지리자동차, 상하이GM 등 다른 대형 완성차 업체들도 할인 경쟁에 가세하면서 최근 중국 전기차 시장은 '치킨 게임(chicken game·한쪽이 이길 때까지 피해를 보며 경쟁하는 것)'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3년 전부터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축소하는 등 전기차 업체의 자력 경쟁을 유도해 왔다"며 "앞으로 중국 전기차 시장의 흐름은 양적 팽창보다는 구조조정에 중점을 두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에서 전기차의 성장성이 꺾일 것으로 전망되면서, 완성차 업체들 역시 전략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은 전기차 투자를 줄이고, 다시 내연기관차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도 했다.
현대차·기아는 최근 수년간 전기차 경쟁력 강화와 생산 확대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왔다. 지난해 10월에는 76억달러(약 11조원)을 들여 미국 조지아주에 친환경차 생산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준공하기도 했다. 현재 이 공장에서는 아이오닉5와 아이오닉9 등 전기차만 생산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메타플랜트 아메리카의 하이브리드차 생산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반면 하이브리드차는 수요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현대차·기아의 하이브리드차 합산 판매량은 3만110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3.5%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