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프를 대표하는 랭글러는 미국 군용 차량 '윌리스'를 기반으로 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마니아층이 두터운 모델이다. 랭글러 중 오프로더 사양이 특화된 루비콘 트림을 시승했다. 차량은 겉모습만큼 거칠고 강력한 주행 성능으로 험한 노면도 가뿐히 달렸다. 다만 실내 구성이 투박하고 승차감이 안락하지는 않아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랭글러 외관은 존재감이 강하다. 다른 차들과 나란히 서 있으면 몸집이 유독 크게 느껴진다. 곡선이 없는 박스형 차체부터 바깥으로 튀어나온 거대한 전면 범퍼, 휠 펜더(바퀴를 감싸는 패널부), 후면에 달린 스페어 타이어 등이 차량을 더 커 보이게 한다. 공식 제원은 전장(차 길이) 4800㎜, 전폭(너비) 1940㎜, 전고(높이) 1865㎜, 휠베이스(앞뒤 바퀴 사이 거리) 3010㎜다.
한정판으로 나온 41 에디션은 실제 군용차를 떠올리게 하는 올리브 드랩(Olive Drap) 색상이 입혀졌다. 41 에디션은 국내 50대 한정으로 출시된 랭글러 컬러 에디션 중 하나로, 1941년 출시된 군용차 윌리스 MB(Willys MB)를 기념하는 모델이다. 지프는 독특한 색상, 옵션 등을 더한 랭글러를 주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문을 열면 전동 사이드 스텝(발 받침대)이 자동으로 작동해 쉽게 올라탈 수 있다. 육중한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특별히 넓지 않다. 전면, 측면 창문 크기가 일반 차들보다 크지 않은 데다 각종 물리 버튼이 빽빽하게 배치돼 있어 협소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트는 딱딱한 편이다.
역대 랭글러 중 가장 크다는 12.3인치 터치스크린이 탑재됐음에도,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하다. 대부분의 기능은 터치스크린 하단에 있는 물리 버튼으로 조작해야 하는데, 창문을 여닫는 버튼도 중앙에 있다. 바늘 속도계 등으로 구성된 계기판은 불편하진 않지만, 디지털에 비하면 덜 직관적이다. 방향 지시등을 비롯한 레버는 딱딱한 편이라 제법 힘을 줘서 밀어야 했다.
주행 질감은 전반적으로 거칠고 투박하다. 시동을 걸면 우렁찬 엔진음이 뿜어져 나오는데, 주행 중에는 잦아든다. 초반 발진 가속은 묵직하지만, 일정 속도 이상 탄력을 받으면 부드럽고 가볍게 치고 나간다. 고속 주행 시에는 풍절음(바람을 가르는 소리)과 하부에서 유입되는 노면 소음이 심해졌다.
전고가 높아 시야는 탁 트였지만, 좁은 도로를 달리거나 주차할 때는 길고 넓은 전면부 차폭이 낯설 수 있다. 특히 도로변에 평행 주차를 할 때는 큰 펜더가 연석을 가려 사각지대가 발생하기도 했다. 전후방 센서·주차 보조, 사각지대 모니터링 시스템 등은 기본으로 탑재돼 있다.
차량 특성상 일반 승용차나 도심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보다는 승차감이 떨어진다. 차체가 덜컹거리면서 몸이 좌우로 흔들리거나 진동이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뒷좌석은 장거리 주행 시 피로감이 클 것으로 보인다. 거친 노면이나 심한 둔턱은 차체가 충격을 대부분 흡수하며 여유롭게 빠져나갔다. 경사가 심한 언덕에서 멈추거나 출발할 때도 밀림 없이 안정적이었다.
오프로드 주행에 특화된 차량이라 편의 및 안전 기능에 신경을 쓴 느낌이다. 차량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풀 스피드 전방 충돌 경고 플러스 시스템, 사이드 커튼 에어백, 원격 시동 시스템 등 65개 이상의 옵션이 적용됐다. 공식 연비는 복합 기준 리터(L)당 7.5㎞(도심 7.1㎞/L, 고속 8.1㎞/L)로 실제 연비는 8~9㎞대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랭글러는 크게 3가지 트림으로 판매된다. 엔트리 모델 스포츠S, 오프로드 특화 모델 루비콘, 온로드 주행 성능을 높인 사하라다. 가격은 스포츠S 4도어 하드톱 7270만원, 루비콘 2도어 하드톱 8040만원, 루비콘 4도어 하드톱 8340만원, 루비콘 4도어 파워톱 8590만원, 사하라 4도어 하드톱 8090만원, 사하라 4도어 파워톱 8340만원부터 시작한다. 41 에디션은 트림별로 가격이 상이하고, 시작가는 807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