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90은 볼보가 창사 이후 최초로 선보인 전기 세단으로 지난 3월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처음 공개됐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볼보의 전기차답게 ES90은 첨단 안전 기술이 적용됐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ports Utility Vehicle·SUV)에 버금가는 실용성까지 갖췄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부 해안의 휴양 도시인 니스와 모나코의 총 110㎞ 구간에서 ES90을 시승했다. 시승 구간은 시속 30~50㎞로 제한된 주거지 주변 도로, 해안가 고속도로, 좁고 구부러진 오르막길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ES90은 싱글모터 후륜구동·트윈모터 사륜구동·트윈모터 퍼포먼스 사륜구동 등 세 가지 트림으로 나뉘는데, 이날 시승한 차는 싱글모터가 탑재된 모델이었다.
ES90은 세단이지만, SUV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일반적인 세단과 달리 패스트백(fastback·지붕 뒤쪽에서 후면부 램프까지 경사가 완만하게 설계된 차) 형태로 만든 데다, 차체 바닥과 지면 사이의 간격(지상고)이 컸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간결하면서도 볼보의 독창적인 요소가 강조됐다. 전면부 헤드라이트는 볼보 모델에 적용되는 누운 T자형, 이른바 '토르의 망치' 형태로 설계됐다. 후면부에는 새롭게 개발된 세로형 C자형 LED 리어 램프가 적용돼 차체와 매끄럽게 조화됐다.
주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든 느낌은 놀랍도록 조용하다는 점이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엔진 구동음이 없지만, 어느 정도의 소음은 있는 편이다. 특히 고속 주행을 할 경우 노면의 마찰음이나 바람이 창문과 부딪혀 생기는 풍절음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ES90은 주행하는 동안 공조 장치에서 나오는 옅은 바람 소리 등을 제외하면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후 가속페달에 힘을 싣자, ES90은 조용하면서도 묵직하게 속도를 붙이며 치고 나갔다. 이날 시승한 ES90 싱글모터 트림은 최고 출력 245kW(333마력), 최대 토크 480N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이르는데 6.9초가 소요된다.
ES90은 볼보 최초로 800볼트(V) 전기 파워트레인이 적용됐다. 후륜구동 모델은 뒤축에 단일 전기 모터가 장착돼 다양한 환경에서 균형 잡힌 주행 성능을 느낄 수 있다. 전기차 특유의 회생 제동 능력을 활용한 '원 페달 드라이빙' 기술도 적용돼 가속 페달만으로 주행과 제동이 가능하다.
ES90은 곡선 주로에서 가속을 해도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니스의 해안 도로에서 모나코의 종착지까지 이르는 코스는 좁은 급경사 산길이었는데, 굽이진 길을 시속 80㎞ 이상으로 달려도 급격한 방향 전환을 매끄럽게 소화하며 차체를 안정감 있게 유지했다.
운전자를 위한 편의 사양도 다양하게 적용됐다. ES90은 대시보드 중앙에 있는 14.5인치 독립형 중앙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와 운전대 앞에 배치된 독립형 디스플레이, 앞 유리창의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세 가지 기기에 주행 정보가 표시된다. 운전자는 이를 통해 현재 속도, 제한 속도, 운행 경로 등 각종 정보를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운전대 앞의 독립형 디스플레이는 여러 경쟁 모델이 5인치인데 비해 ES90은 9인치로 만들어져 보기 편하다.
탑승자를 위한 공간 설계도 돋보였다. 조수석 시트를 최대한 앞으로 당기지 않아도 신장 180㎝의 남성이 편하게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뒷좌석 공간이 넉넉했다. 준대형 모델인 ES90은 전장 5000㎜, 전폭 1942㎜, 전고 1550㎜로 내연기관차인 S90이나 제네시스 G80보다 크다. 앞바퀴와 뒷바퀴 중앙 사이의 거리인 휠베이스(축거)는 대형 세단인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와 비슷한 3100㎜다.
볼보는 내년 중 ES90을 국내에서 출시할 계획이다. 외신에 따르면 ES90의 유럽 시장 판매 가격은 가장 낮은 트림인 싱글모터가 7만유로(약 1억1600만원) 이상으로 책정됐다. 경쟁 모델로 꼽히는 아우디 A6 e-트론의 국내 시작 가격은 약 9500만원, 메르세데스-벤츠 EQE는 약 1억원이다.
ES90은 안전과 편의성 등에서 고른 강점을 갖췄지만, 다양한 수입 전기차 경쟁 모델이 있는 만큼 합리적인 가격 책정이 국내에서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