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벌써 지나간 거야?"
12일 오후 2시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AMG 스피드웨이 서킷. 세계 최대 모터스포츠 대회 포뮬러원(F1) 현역 선수인 발테리 보타스의 첫 번째 주행이 시작되자, 휴대폰과 카메라로 서킷을 찍고 있던 관중들 사이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멀리서부터 거대한 굉음을 내면서 달려온 F1 차량(경주차)은 코너 구간에서 잠깐 속도를 줄이나 싶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날 서킷에선 F1 쇼런(Show run·시범 주행 이벤트)이 열렸다. 국내에서 F1 쇼런이 진행된 건 2012년 레드불 팀의 서울 잠수교 행사 이후 13년 만이다. F1 경주차가 국내 서킷을 달린 것은 2013년 전남 영암에서 열린 F1 코리아 그랑프리가 마지막이다.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보타스의 F1 경주차(메르세데스-AMG F1 W13 E퍼포먼스) 주행을 보기 위해 약 3만명의 관중이 모였다.
보타스는 현재 메르세데스-벤츠의 F1팀인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의 리저브 드라이버인 세 번째 드라이버로 활약하고 있다. F1 그랑프리에서 총 10승, 20회의 폴 포지션(출발선 맨 앞자리), 67회의 포디움(시상대)을 기록한 베테랑 선수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루이스 해밀턴과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날 오전에는 서킷 입구에서 2㎞가량 떨어진 지점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은 F1을 비롯한 모터스포츠 팬들로 성별과 연령대는 다양했다. 메르세데스를 비롯한 특정 F1팀의 유니폼을 입거나 모자를 쓰고, 보타스를 응원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기도 했다. 일부는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전날 밤부터 줄을 서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F1 인기가 치솟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모터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올해 시즌 7까지 공개된 넷플릭스 F1 다큐멘터리 '본능의 질주' 시리즈,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F1 더 무비'가 흥행한 영향이다.
보타스는 행사 전 기자 간담회에서 "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수많은 팬이 플래카드를 들고 팀 유니폼을 입고 환대해 줘 놀랐다"며 "행사 규모도 이렇게 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이미 충분하다. F1 그랑프리 대회가 열리거나, 드라이버가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인천시는 한국에 F1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에 모나코, 미국 라스베이거스 같은 도심형 서킷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전남도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영암에 전용 서킷을 구축해 F1 그랑프리 대회를 유치했지만, 재정난이 심화하면서 당초 계획한 7년은 채우지 못했다.
보타스가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것도 2013년 영암에서 열린 F1 그랑프리 대회였다. 그해 F1에 데뷔한 보타스는 "당시 한국에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랑프리 대회가 열린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며 "(영암 대회 때) 아쉬웠던 접근성 문제만 해결되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메르세데스-벤츠 300SL, 전 세계 75대 한정으로 제작된 메르세데스-벤츠 SLR 스털링 모스 등 국내에서 보기 힘든 차량도 곳곳에 전시됐다.
F1은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는 모터스포츠 대회로 1950년 영국 실버스톤 서킷에서 처음 열렸다. 연평균 관람객은 400만명, 시청자는 6억명이 넘는다. 매년 전 세계 20여 나라를 돌면서 그랑프리 대회가 열리고, 라운드별 득점을 합산해 챔피언을 결정한다. 올해 시즌은 총 24라운드로 현재까지 18라운드가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