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이 국내외에서 악재가 맞물리며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은 관세 인하 효과를 누리게 됐지만, 현대차는 관세 인하가 늦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합작해 짓는 조지아주 공장은 불법 체류자 단속으로 차질이 불가피하고 국내에선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이 늦어져 7년 만에 파업이 벌어졌다.
8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이르면 이번 주부터 일본산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2일 미·일 무역 합의 이후 45일 만에 관세 인하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일본 업체들은 한발 앞서 관세 부담을 덜게 됐다. 한국 역시 지난 7월 말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행정 절차가 지연되면서 여전히 25%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한·미 양국은 아직 실무 협상 단계로 언제 관세가 15%가 될지는 알기 어렵다. 관세 인하가 지연되면 미국에서 일본 차와 경쟁하는 현대차그룹은 불리해진다. 현대차는 당분간 일본 도요타, 혼다 등보다 10%포인트(P)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자동차 가격에 반영하면 일본 차보다 비싸지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25% 관세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지 않고 있다. 지난 2분기 현대차그룹은 관세 부과로 영업이익이 약 1조6000억원 감소한 것으로 추정됐다. 15% 관세가 적용되고 이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지 않으면 월 손실액은 약 3000억원으로 줄지만, 관세 인하가 늦어지면서 3분기 이익 감소분도 1조원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배터리 공장도 차질이 예상된다. 지난 4일(현지 시각)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국토안보수사국(HSI)은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HL-GA) 건설 현장을 압수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전자여행허가(ESTA), B-1(단기 상용) 비자로 체류 중인 수백 명의 한국인 직원을 구금했다.
현대차는 SK온과도 내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합작 공장을 짓고 있는데 비자 문제 등 기존 출국 관행을 재검토하고, 대체 인력을 충원하는 과정에서 비용과 시간이 모두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차는 당분간 임직원의 출장을 최소화하고, 필수 불가결한 일이 아니면 출장을 보류하도록 했다.
배터리 공장이 타격을 받으면 현대차그룹이 추진해 온 전기차 중심의 현지 생산 확대 전략에도 차질이 생긴다. 현대차는 관세 부담 완화를 위해 배터리 공장 인근에 있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생산 능력을 연 30만대에서 50만대로 늘리는 등 현재 70만대인 미국 생산 능력을 120만대로 늘릴 계획이었다.
국내에선 노동조합과의 임단협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상태다. 현대차 노조는 임금 인상뿐 아니라 정년 연장, 주 4.5일제 등을 요구하며 부분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 주 협상에서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파업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아(000270) 노조도 교섭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여러 변수들이 동시에 겹치면서 기존에 예정된 현대차그룹 주요 일정 변화와 대응 방안에 관심이 쏠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11일(현지 시각)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리는 '오토모티브뉴스 콩그레스' 행사에 참석해 메리 배라 제너럴모터스(GM) 회장과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18일에는 뉴욕에서 해외 첫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 행사가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