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내연기관과 전기자동차의 장점을 모두 갖춘 하이브리드차의 판매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에 지난 수년간 순수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주력해 온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 도요타는 최근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현대차(005380) 역시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늘리기로 하는 등 전략 변화를 고심 중이다.
27일 미국 에너지관리청(EIA·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따르면 올 3분기 미국의 경량 자동차(LDV·Light Duty Vehicle) 시장에서 순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플러그인 하이드리드차(Plug-in Hybrid Electric Vehicle·외부 전력을 이용해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는 차) 등 3종의 친환경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 분기 대비 2.1%포인트(P) 늘어난 21.2%로 집계됐다. LDV는 승용차와 5톤(t) 이하 트럭으로 구성된다.
하이브리드차의 비중은 10.6%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2020년까지 전체 LDV 시장에서 하이브리차의 비중은 2%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 몇 년 간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순수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분기 7.4%에서 3분기에는 8.9%로 늘었지만, 하이브리차의 판매 실적에는 미치지 못했다. 하이브리드차는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비싸지만, 연료 효율성이 높고 정숙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사이에서 고민하는 소비자들에게 대안이 되고 있다.
주요 자동차 제조사 가운데 하이브리드차 성장의 수혜를 가장 톡톡히 받는 곳은 도요타다. 삼성증권(016360)에 따르면 올 들어 10월까지 미국의 하이브리드차 전체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34% 급증한 127만1000대를 기록했는데, 이 중 도요타의 점유율은 58%에 달했다. 특히 올해 출시한 중형 세단 캠리가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 판매를 이끌고 있다. 도요타는 올해부터 미국에서 판매하는 캠리를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로 전환했다.
2010년대 이후 세계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도요타는 고집스럽게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에 주력해 왔다. 지난 2009년부터 도요타를 이끌어 온 도요타 아키오 회장은 대표적인 ‘전기차 비관론자’로 꼽힌다. 그는 여러 차례 전기차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초에도 “전기차의 시장 점유율을 최대 30%로 본다. 내연기관차도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를 모두 탑재해야 해 요구되는 기술 수준이 높고, 생산 과정도 복잡하다. 도요타는 오랜 기간 전기차 대신 하이브리드차에 연구개발(R&D) 자원을 투입했고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하이브리드차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와 기아(000270) 역시 최근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지난 10월 미국에서 현대차·기아의 합산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2만1679대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곧 출시할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팰리세이드의 완전 변경 모델인 ‘디 올 뉴 팰리세이드’의 사전 계약을 받고 있는데, 첫날 계약자의 약 70%가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디 올 뉴 팰리세이드의 하이브리드 모델은 가솔린 모델에 비해 가격이 600만원 이상 비싸다.
글로벌 시장에서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계속되자 현대차그룹은 최근 생산·판매 전략을 수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달 출범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전기차에 대한 혜택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라 순수 전기차의 비중 축소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76억달러(약 11조1500억원)를 투자해 연간 30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를 건설하고 지난 10월부터 가동 중이다. 당초 메타플랜트에서는 전기차를 주력으로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하이브리드차의 생산 비중을 늘리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