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랜드로버는 올해 4월 국내에 ‘올 뉴 디펜더 110′를 출시했다. 110 P400 X 트림을 시승해보니 영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오프로더(거친 길을 달리는 능력을 갖춘 차)다운 주행 성능이 인상적이었지만, 고급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과 각종 안전 및 첨단 사양은 일상 도심 주행에도 적합해 보였다.
디펜더 110 전장은 5m가 넘고, 전고는 약 2m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크다. 디펜더는 기본형인 110, 숏 휠베이스(축간거리) 90, 롱 휠베이스 130 등 3종으로 구분된다.
거대한 차체를 끌어가는 힘은 셌다. 직렬 6기통(I6) 인제니움 가솔린 엔진과 랜드로버의 오프로드 기술이 맞물리며 최고 출력 400마력, 최대 토크 56.1kg.m의 성능을 지녔다. 첨단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 기술이 적용돼 엔진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배기가스 배출은 줄여준다.
주행 성능은 오프로드는 물론 일반 도로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완벽한 험로는 아니지만 포장이 고르지 않은 언덕을 오르내릴 때도 가볍게 발진했고, 핸들링은 안정적이었다. 높은 강성의 알루미늄 차체 구조가 진흙, 자갈밭, 강물 등에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높은 차체에도 코너를 도는데 몸이 좌우로 크게 쏠리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고 운전대를 급하게 꺾을 때도 차선에서 밀린다는 느낌이 없었다. 통상 몸집이 큰 SUV는 무게 중심이 높아 회전할 때 차가 좌우로 흔들리는 이른바 ‘롤링’(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마치 세단을 모는 듯한 안락한 승차감이 돋보이지만, 거대한 차체만큼 내부 공간이 넓은 탓인지 가속할 때 자잘한 소음이 공명(진동)을 유발했다. 평탄한 도로에서는 대체로 정숙성이 유지됐는데, 방지턱이나 맨홀처럼 덜컹거리는 구간을 지날 때 소음이 두드러졌다.
차량에는 주행을 보조하는 각종 안전 및 첨단 기능이 탑재됐다. 컴포트, 에코, 스노우, 머드, 샌드, 암석 및 도강 모드 등 주행 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노면 상태에 따라 파워트레인과 브레이크 시스템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 및 카메라 등도 장착됐다.
자로 잰 듯한 외모는 딱딱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디펜더만의 개성도 담고 있다. 전면부는 특유의 둥근 헤드램프와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영문 레터링 ‘DEFENDER’가 이목을 끈다. 후면부에 정사각형으로 나열된 방향 지시등, 노출형으로 장착된 스페어(여분) 타이어는 오프로더 감성을 더했다.
실내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운전대를 잡으면 중앙의 디펜더 레터링과 중앙 모니터, 대시보드가 수평을 가로지르며 일체감을 준다. 다만 1열 공간 규모나 운전대 크기를 고려할 때 중앙 모니터는 아담하게 느껴진다. 좌석은 높은데 측면에 달린 문손잡이는 아래쪽에 있어 다소 불편했다.
3m가 넘는 휠베이스 덕에 좌석과 수납 공간은 여유롭고 널찍하다. 1열과 2열에 앉았을 때 확보되는 시야나 개방감은 비슷했는데, 2열 레그룸은 1m에 가까운 992㎜ 수준이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972리터(L)로, 2열을 접을 경우 최대 2380L까지 늘어난다. 육안으로만 봐도 여행용 가방, 골프백, 레저용품 등을 한번에 담을 수 있는 규모다.
트림별로 차이는 있지만 가격은 1억원 초중반대로 높은 편이다. 5년 서비스 플랜 패키지가 포함된 판매 가격은 D250 SE 1억760만원, D300 X-Dynamic HSE 1억2610만원, P300 X-Dynamic SE 1억1320만원, P400 X 1억4600만원이다. P400 X 복합연비는 6.9㎞/L로 효율성 측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