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 지역에 생산 기지를 둔 국내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멕시코에는 완성차·부품사 및 가전 기업이, 캐나다에는 2차전지 제조사들이 주로 진출해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5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에 첫 행정명령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서류에 서명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멕시코, 캐나다를 통해 펜타닐 등 각종 마약이 유입되고 있다. 이 관세는 마약과 불법 외국인들의 미국 침략이 중단되기 전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현재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2000여곳에 이른다. 지난 2020년 발효된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3개국의 자유무역협정(USMCA)에 따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에 무(無)관세 혜택이 적용됐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관세가 부과되면 국내 기업의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기아 임직원들이 멕시코 공장에서 열린 200만대 생산 및 K4 생산 기념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아 제공

◇ 車·부품·가전업계, 무관세 노리고 멕시코서 공장 가동

기아(000270)는 미국에서 판매하는 프라이드(수출명 리오)와 K3 등을 멕시코 누에보 레온의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기아의 멕시코 공장 투자 규모는 지난해 1780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 대비 750% 넘게 급증한 수치다. 기아는 향후 멕시코 공장에서 전기자동차도 생산하기 위해 대규모 비용을 투입했다.

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78만2451대를 판매했다. 이 가운데 멕시코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들어간 차량은 15만5000대였다. 미국 전체 판매 물량의 약 20%가 멕시코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내년부터 25%의 관세가 부과되면 사실상 멕시코에서 미국으로의 수출 길은 막힐 수 밖에 없다.

자동차 부품사들도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멕시코 코아우일라 지역에 지은 공장에서 전기차 구동모터의 핵심 부품인 구동모터코어를 생산 중이다. LG전자(066570)와 캐나다 부품 제조사인 마그나가 합작한 LG마그나도 코아우일라에서 구동모터와 인버터를 만들고 있다. HL만도(204320)도 같은 지역에서 기아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에 납품하는 부품을 생산 중이다. LS전선은 지난 8월 케레타로에 버스덕트와 전기차 배터리 공장 등 2곳의 생산 시설을 착공하기도 했다.

멕시코에서 미국 판매용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기업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성전자(005930)는 티후아나 지역에서 TV를, 케레타로에서 냉장고와 세탁기 등을 각각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LG전자도 레이노사와 몬테레이 등 멕시코 내 여러 지역에 TV와 냉장고 등을 만드는 공장을 두고 있다.

지난 8월 2일 멕시코 케레타로주(州) 산업단지의 버스덕트 공장 착공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세 번째부터 김기남 LS EVM 관리담당, 구본규 LS전선 대표, 마우리시오 쿠리 케레타로주 주지사, 마르코 델 프레테 개발부 장관, 아돌포 콜린 코레이도라시 시장. /LS전선 제공

◇ 캐나다에 공장 짓는 2차전지 업체도 직격탄

캐나다는 인건비나 공장 건설 비용이 높아 멕시코만큼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2차전지 제조사들이 미국 기업들과 합작해 캐나다에 공장을 짓거나 막 양산을 시작한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은 미국의 자동차 그룹인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캐나다 온타리오에 배터리 합작 공장을 세워 지난달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포스코퓨처엠(003670)도 미국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해 ‘얼티엄캠’이란 회사를 설립하고 퀘벡에 양극재 생산 공장을 만들고 있다. 엔켐(348370)은 윈저에서 전해액 생산 시설을, 솔루스첨단소재(336370)는 퀘벡에 전지박 공장을 각각 짓는 중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줄곧 전기차에 대한 지원과 혜택을 줄이고, 내연기관차 시장을 되살리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전기차 시장의 침체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멕시코와 캐나다 생산 제품에 25% 관세까지 부과되면 국내 부품사와 2차전지 제조사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 밖에 없다.

포스코퓨처엠과 제너럴모터스(GM)의 합작사 얼티엄캠의 캐나다 퀘벡주 베캉쿠아 양극재 공장 건설현장. /포스코퓨처엠 제공

◇ 멕시코産 자동차 절반 이상은 美 업체

트럼프 당선인이 공언한 대로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기업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미국 제조사들 역시 최근 몇 년 간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국을 떠나 멕시코 등에 생산 기지를 늘려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수출된 차량은 총 255만4000대였다. 이 가운데 GM,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3대 자동차 그룹이 생산한 물량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131만3000대에 달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해 왔는데, 관세가 적용되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전기차·배터리 부품 조달도 막히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인이 섣불리 관세를 부과하면 오히려 자국 기업들이 위기에 빠지고, 미국 내 물가가 급등하는 역효과를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취임일까지 약 두 달의 기간이 남았고, 실제로 관세 부과를 결정할 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로선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