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통 픽업트럭 ‘타스만’을 선보인 기아(000270)가 내년 한국을 시작으로 중동, 호주, 아프리카 등 신흥 시장을 중심으로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기아는 픽업트럭 수요가 많은 미국에는 출시하지 않는데, 미국이 수입 픽업트럭에 부과하는 높은 관세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아는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2024 제다 국제모터쇼’에서 타스만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같은 시각 기아는 호주 최남단의 섬 타스마니아 주도 호바트에서도 타스만을 처음 선보이는 행사를 마련했다. 타스만은 타스마니아와 타스만 해협에서 따온 이름이다.

기아가 호주에서 공개한 첫 픽업트럭 '타스만'. /기아 호주 법인 홈페이지 캡처

기아는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과 호주를 집중적으로 공략할 계획이다. 호주는 연간 20만대 이상의 픽업트럭이 판매되는 곳으로, 전 세계에서 북미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픽업트럭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중동, 아프리카는 지형 특성 때문에 픽업트럭 수요가 꾸준히 커지고 있다.

글로벌 픽업트럭 판매 규모는 미국을 제외하면 연간 약 200만대다. 기아는 타스만의 글로벌 판매량 목표를 연간 약 10만대로 잡았다. 출시 초기에는 연간 8만대, 이후 10만대로 늘린다는 구상이다.

기아가 세계 최대 픽업트럭 시장인 미국을 제외한 건 이른바 ‘치킨세’(chicken tax)로 불리는 관세 때문이다. 미국은 자국 내 수요가 많은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64년부터 수입 픽업트럭에 25%의 관세를 물리고 있다. 당시 유럽이 미국산 닭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 관세로 대응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2018년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픽업트럭 관세 철폐 기간을 2041년으로 연장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생산한 픽업트럭을 미국으로 수출하는 건 가격 경쟁력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아는 타스만을 경기 화성공장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포드 픽업트럭 F-150. /포드코리아 제공

더욱이 미국 픽업트럭 시장은 대형(Full-size) 모델이 주도하고 있는데, 타스만은 중형(Mid-size) 모델로 분류된다. 기아는 타스만 출시 경험을 기반으로 준대형 픽업트럭을 개발한 뒤 미국에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된 픽업트럭 약 284만대 중 166만대는 제너럴모터스(GM), 포드의 대형 모델이 차지했다. 포드 F-150, GM 쉐보레 실버라도, GMC 시에라 등이다. 기아는 타스만의 주력 경쟁 모델로 중형 픽업트럭인 포드 레인저, 도요타 하이럭스를 꼽았다.

해외와 비교하면 국내 픽업트럭 시장은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카이즈유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픽업트럭 판매량은 1만8199대로 전년대비 38.7% 감소했다. 지난 2019년까지만 해도 연간 4만대 이상 팔렸지만, 이후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해 판매된 픽업트럭 중 80%는 렉스턴 스포츠였고, 수입 픽업트럭 점유율 1위는 쉐보레 콜로라도가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