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의 최초 발화 지점으로 차량 하부 배터리 팩이 지목된 가운데,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배터리 셀의 손상이 화재 발생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당시 화재로 차량 78대가 불에 타고 880대가 그을림 등의 피해를 봤다. 대규모 정전과 단수가 이어지면서 입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기도 했다.
26일 인천경찰청 과학수사대에 따르면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차량 하부 쪽 배터리 팩에서 발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국과수는 또 “차량 밑면에 대한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 팩 내부의 셀이 손상돼 절연 파괴되면서 발화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배터리관리장치(BMS)는 완전히 타 데이터 추출이 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차례에 걸쳐 국과수, 인천서부소방서, 자동차안전연구원 등과 함께 화재 전기 차량의 배터리 팩을 분해하는 등 합동 감식을 벌였다. 조사 당국은 배터리 모듈과 셀을 정밀 감정해 불이 시작된 지점 등을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전기차에 장착되는 배터리는 제작 단계별로 셀→모듈→팩 단위로 나뉜다. 셀 여러 개를 묶어 모듈을 만들고 이 모듈을 여러 개 합쳐 하나의 팩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청라 화재 차량인 EQE350 모델의 배터리 셀은 중국 업체 파라시스 제품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감정 내용을 바탕으로 형사기동대에서 전기차 화재 원인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사 결과로 벤츠 화재 사건의 분위기가 전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중국산 배터리의 결함으로 화재가 발생했을 것이란 추론이 많았다. 만약 주행 중 발생한 충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되면 벤츠는 화재 책임 부담을 다소 해소할 수 있다. 현재 경찰은 차주를 상대로 주차 전 행적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사고 차량 BMS(Battery Management System)의 모니터링 기능도 살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당 차량은 배터리에 이상 징후가 있으면 BMS 알림을 보낸다. 차주가 화재 이전에 주행 충격이나 화재 당시에 알림을 받았는지도 확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통 차량의 시동이 꺼지면 BMS는 절전모드에 진입해 일정 시간 동안 비활성 상태가 된다. 하지만 온도 변화 등 특정 조건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주차 중에도 BMS 모니터링이 활성화된다. 이 경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 차주가 동의한 방법으로 알림을 보낸다.
벤츠코리아 관계자는 “당국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며 “조사와 관련한 정보는 공개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