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과충전이 전기차 화재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오히려 배터리 셀 내부나 배터리관리시스템(BMS)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윤원섭 성균관대 배터리공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N센터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 전문가인 윤 교수는 이날 전기차 화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윤 교수는 전기차 화재 원인을 배터리 과충전으로 단정하는 분위기에 대해 특히 우려를 표했다. 그는 “충전 깊이(충전율)와 화재가 연관성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배적인 원인은 아니다”라며 “100% 충전이라는 건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 양극의 100% 용량은 (g당) 275mAh(밀리암페어시)가량인데, 실제 쓰는 건 200∼210mAh 정도”라며 “우리가 100%라고 말하는 것은 안전까지 고려한 배터리 수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론 충전을 이보다 더하면 위험할 순 있지만 배터리 셀 제조사나 자동차업체는 각각 안전 마진을 기반으로 설계·검증하고 과충전을 막는 기술을 갖고 있다”며 “충전 깊이보다는 셀 내부 결함이나 그 결함을 관리하는 BMS 문제로 화재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충전 속도와 온도, 습도 같은 외부 환경 역시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완속보다 10~100배 빠르게 충전하면 전압이 더 올라가 위험한 측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같은 화재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는 게 윤 교수의 설명이다.
지난 1일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에 대해서는 배터리 셀 내부 결함 가능성을 제시했다. 윤 교수는 “결함이라고 하면 불량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그보다는 수억개의 셀을 만들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셀의 편차라고 보는 게 맞다”며 “이런 편차는 BMS가 관리하고 초동 조치를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배터리 셀 내부 결함에는 전조 증상이 반드시 있다”며 “(벤츠 전기차 화재는) 갑자기 발생한 것이 아니고 온도나 전압 등 분명한 시그널이 있었을 것이다. 차량 클라우드 등에 관련 기록이 충분히 남아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가 자동차 엔진만큼 중요한 부품으로, 제조사 공개가 안전이나 소비자 선택권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배터리 셀 제조사에 더해 NCM 조성 비율, 양극 소재 등 기본적인 셀 케미스트리(화학요소)도 공개해야 한다는 게 윤 교수의 입장이다.
그는 정부, 지자체 등이 내놓은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에 대해 “충전량 등 정확한 화재의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지하 주차장 진입 금지 등 조치는 심리적인 불안감을 잠재워줄 순 있지만 자칫 마녀사냥이 될 수 있다”며 “과한 우려를 갖고 모든 것을 제한하면 산업 경쟁력 측면에서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