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005380)그룹과 일본 도요타 등 대형 자동차 제조사들이 테슬라의 제조방식 ‘기가 캐스팅(Giga Casting)’을 따라 도입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가 캐스팅은 작은 부품을 세세하게 조립·용접하는 대신 일체화된 섀시를 한 번에 생산하는 것으로 생산 속도가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든다. 포드가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100여 년 만에 자동차 업계에 새로운 제조 혁신의 바람이 불지 관심이다.
12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000270)는 최근 특허청에 ‘하이퍼 캐스팅’이라는 명칭으로 상표권 등록을 신청했다. 초대형 금형 설비를 이용해 한 번의 주조로 차체를 찍어내는 테슬라 방식의 제조법을 도입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 노사는 지난 5월 중앙노사협의회를 통해 하이퍼 캐스팅과 관련한 실증을 진행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기가 캐스팅은 테슬라의 대표적인 제조 기술이다. 테슬라가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 공장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Y 생산에 기가 캐스팅 공법을 도입한 것이 시초다. 테슬라는 이후 미국 텍사스, 중국 상하이, 독일 베를린 등 공장에도 기가 캐스팅을 확대 적용했다. 테슬라는 사이버트럭도 9000톤(t) 규모의 기가 캐스팅 기계로 생산한다.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다른 제조사들도 기가 캐스팅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기가 캐스팅은 차체 무게를 줄일 수 있어 전기차 생산에 적합하다. 공차 중량을 낮추면 전비와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다.
도요타는 지난 6월 기가 캐스팅 도입을 공식화했다. 도요타는 새로운 전기차 플랫폼을 적용한 신차를 2026년 출시하는데, 전면과 후면 섀시를 기가 캐스팅으로 만들기로 했다. 도요타는 기존 방식과 기가 캐스팅 방식으로 제조한 섀시를 실물로도 공개했다. 후면 섀시의 경우 기존에는 86개의 개별 부품이 33단계로 조립됐으나 기가 캐스팅에선 하나의 부품으로 통합됐다.
볼보도 차세대 전기차 생산을 위해 2025년까지 스웨덴 토슬란다 공장에 ‘메가 캐스팅’ 공정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100억스웨덴크로나(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한다. 중국 지리차그룹은 올해부터 전기 미니밴 지커009를 기가 캐스팅 공법으로 생산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도 차세대 전기차 ‘트리니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독일 공장에 기가 캐스팅 공법을 도입하겠다고 밝혀왔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알릭스파트너스는 기가 캐스팅 시장이 작년 730억달러(약 96조원) 규모에서 2032년 126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테슬라에 기가 프레스 설비를 공급한 장비 제조사 이드라(IDRA)는 “기가 캐스팅 공법을 활용하면 전기차 제조사가 배터리 다음으로 비싼 부품인 섀시를 제작하는 비용을 평균 30% 줄일 수 있다”며 “2035년까지 자동차 제조사의 80%가 기가 프레스를 사용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기가 캐스팅의 단점은 수리비다. 일체형 섀시를 쓰기 때문에 일부만 손상돼도 전체를 교환해야 한다.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은 이 점을 우려하며 기가 캐스팅 공법을 도입하지 않는다고 2021년 발표했다. 그는 “자동차에 매우 큰 통합형 부품을 장착해야 할 경제적인 이유가 전혀 없다. BMW의 부품은 지극히 정상적인 제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테슬라 지지자들은 자율주행 기술이 발달하면 사고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 제조 컨설팅 기업 먼로 앤 어소시에이츠(Munro & Associates)의 코리 스튜벤 사장은 “테슬라는 심각한 충돌을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차를 설계하고 있다”고 말했다.